아들은 한사코 아버지와의 공동 인터뷰를 거절했다. 쑥스럽다는 이유다.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둑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어서였다.
바둑으로 세상과 어울리고 있는 아버지 송중택과 프로기사 아들 송상훈, '송부자(父子)'의 동상이몽 속으로 들어가본다.

●…바둑의 시작
父: 유치원 때부터 바둑을 알려줬다. 시각장애가 있는 부모와 그렇지 않은 자식 사이에 소통의 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바둑이 훌륭한 매개체일 거라 생각했다.
딸 단비는 실력이 더 출중해 프로기사가 되길 바랬으나 6학년 때 바둑을 접었다. 연구생 3-4조로 활동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신기하게 상훈이는 계속 한다고 하더라.
子: 8살 때로 기억하는데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누나와 바둑학원에 갔다. 실력이 빠르게 느는 편은 아니었지만 재미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까지는 별 생각 없이 계속 바둑학원에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가 6학년 후반쯤인가? 더 열심히 해보기 위해서 서울에 있는 도장에 갔다.
아빠는 늘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 상훈이는 프로기사가 될 거에요’라고 하셨다. 나는 큰 생각이 없었는데 중학교 3년쯤에 결심을 굳혔다.
[여기서 잠깐, 아버지 송중택을 소개한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송중택은 바둑을 무척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스무살이 되던 해까지 프로기사가 되려는 꿈을 키웠을 정도로 실력도 대단했다. 하지만 22살에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게 되면서 바둑도 함께 멀어져 갔다. 다시 바둑을 접한 것은 아내 정문순의 덕분이다. 시력과 함께 바둑도 잃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아내가 시각장애인용 바둑판을 선물하면서 다시 인연이 됐다. 점자바둑판이 있어 송중택의 실력은 더 늘었다.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시각장애인바둑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점자바둑판은 바둑판의 가로줄과 세로줄이 튀어나와 있다. 줄을 만지면서 좌표를 기억한다. 바둑돌은 아래쪽엔 열십자 홈이 파여 있어서 착수하면 바둑판과 맞물려 고정된다. 검은 바둑돌은 위쪽 가운데 볼록하게 튀어나온 데가 있어서 백돌과 구분이 가능하다.

시각장애인이 바둑을 두려면 이미 놓인 바둑돌의 위치를 모두 기억해야 한다. 패싸움도 끝내기도 모두 기억을 해야 한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손바닥으로 반상 전체를 쓰다듬어 본다.
'위기십결(圍棋十訣)'을 남긴 옛날 당나라의 고수 왕적신이 밤중에 산중의 어느 집에 머무는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말로 바둑을 두는 것을 목격했다는 설화가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지 프로기사들에게 눈을 가리게 한 뒤 바둑을 두는 것을 바둑TV에서도 방영 한 적이 있다. 고수의 경우 어느 정도는 가능하나 눈을 가리고 끝까지 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父: 상훈이가 부천에서 서울까지 왕복하는 거리가 힘들었을 것이다. 안마시술소에서 안마사 일을 하면서 도장비는 절대 밀리지 않으려고 바쁘게 지냈다.
子: 14살에 양천제일도장 기숙사에 들어갔다. 매일 부천에서 서울까지 왕복을 했는데 힘들지 않았다. 도장 셔틀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서 친구들하고 같이 사활문제를 풀면서 다니다 보니 힘든지 몰랐다.
●…여행을 같이 다니던 때
父: 바둑이 두어지는 현장에 일부러 데리고 다녔다. 2004년 폴란드, 2005년 체코에서 열리던 유럽바둑콩그레스에 참가했다. 거리감을 좁히려 의도적으로 그랬다.
子: 가족과 함께 여행은 항상 재미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라서 같이 여행하는 것이 쉬웠던 것 같다. 커서 같이 다니기에는 쑥스럽기도 하고, 아빠도 일정이 있으시니 시간 맞추기가 쉽지는 않다.

▲폴란드에서 열린 유럽바둑콩그레스에 출전했다가 잠깐 쉬는 날 왕궁박물관에서 송중택(왼쪽에서 세번째)과 딸 송단비, 송상훈(가운데 어린이).

▲송중택이 특수판으로 바둑 두는 곳엔 언제나 관전자가 많다.
父: 상훈이가 11살에 유럽대회에 참가했을 때 레벨이 나 보다 높았다. 2시간 바둑이어서 어린아이한테는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앞에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동안 상훈이가 하품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워낙 밝은 성격이어서 독일 친구들하고 축구를 하고 와서 “나 독일 친구들이랑 대화했어! 축구하면서 ‘여기여기’했더니 진짜 여기로 패쓰해줬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11월에는 일본 오이타에서 열리는 시각장애인바둑대회에도 함께 간다. 2002년부터 매년 한국대표선수로 출전했는데 자식들도 함께 다녔었다. 상훈이가 입단하고 나서 일정이 맞지 않아서 같이 못 갔는데 올해는 동행한다.
子: 프랑스던가 폴란드던가… 한번씩 갔는데 그 때 외국 선수들이랑 축구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외국은 반말을 쓰니까 이름을 불렀던 것이 기억에 난다. 외국 친구들이 잘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바둑 둔 기억은 일리야 쉭신(현 러시아 프로 초단)한테 졌다. 그땐 내가 너무 약했다.
11월쯤에 아빠랑 일본에서 열리는 바둑대회에 같이 간다. 아빠가 말해줬는데 일본 어딘지는 기억이 안난다. ^^; 누나도 같이 가는데 오랜만이라서 기대가 된다.
○…입단을 하고
父: 입단했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부담이 될 까봐 한국기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끝날 때쯤 해서 대국장 근처에 가니 이겼다고 하더라. 프로만 되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성적이 생각보다 좋지 않으니 기대를 하면서도 안타깝기도 하다.
입단을 하고 지금 느낌 그대로 정진을 하라고 말을 해줬었다. 내가 장애가 없었다면 더 좋은 세상 이야기를 해줬을 텐데 말해줄 수 없어서 무관심했다. 내가 좋은 말을 해도 아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스스로 헤쳐나가길 바랬다. 지금은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子: 지나고 보니 그날 다 좋았던 것 같다. 응원해주러 오신 분들이 점심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셨다. 밥을 먹고 있는데, 지나가던 선배가 계산을 대신 해줬다. 남은 돈을 가지고 친구 3명이랑 청심환을 사먹었다. 3명이 같이 사먹었는데, 그 3명이 다 입단을 했다.
아버지의 꿈은 내가 입단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려서 마음이 편했다. 입단 직후 아버지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셨다.
입단을 하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바둑이 재미있어야 하는데 흥미가 떨어지더라. (혹시 부모님의 기대가 부담이 된 것은 아닌지?) 기대하시는 것을 알기에 부담이 되긴 한다. 아빠는 프로기사가 됐으니 성적을 내길 원하시는 것 같다.

▲수담을 나누는 아버지와 아들로 일간지에 소개된 바 있다(사진=조선일보).
●…자취를 하면서
子: 4월부터 한국기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바둑 시장이 재작년부터 급격히 줄어서 바둑을 공부해도 대회가 없어서 실력을 늘었는지 확인이 어렵다. 고민이 됐는데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해보려고 자취를 선택했다. 혼자 처음 살아보는 것이라서 어려운 점이 많지만 잘 지내고 있다. 아빠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바둑대회 기록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만 집에 가고 있는데 집 근처에 친구가 없어서 그런지 자주 가지 않게 되더라. 아빠는 내가 집에 갈 때 마다 힘드냐고 물어보신다. 자취를 하는 내가 걱정이 되시나 보다. 그 말이 굉장히 좋은 것 같다.

父: 입단하고 본선에 계속 올라가더니 슬럼프가 찾아왔나 보다. 힘들다고 성적이 늘지 않는다고 하더니 한 번 열심히 해보겠다고 한국기원 앞에서 자취를 하겠다고 했다. 두 달인가 지나고 전기세도 내야 하냐고 물어보더라. 하하하. 가족 품에 있다가 나가보니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다. 일부는 잘 됐다 싶다. 집에는 가끔 오는데, 어쩐지 힘이 없어 보인다. 편하게 해주고 싶은데 걱정이 되는 마음에 힘든 것 없냐고 물어보게 된다.
자기 힘으로 살아보겠다면서 기록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더라. 바둑 기록이 네 바둑공부에 도움이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부에 집중하라고 했다. 아빠가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혼자 해보겠다고 해 기특하다. 걱정이 되어서 (아들은 모르겠지만) 가끔 아들 통장의 잔고를 보는데, 아직까지는 잘 유지하고 있더라.
○…바둑가족의 장단점
父: 프로기사 가족들은 대부분 그럴 것 같은데 상훈이랑 대화하면 바둑 일정이나 성적들을 너무 꾀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내가 눈이 잘 보였다면 아들의 표정을 보고 위로를 하거나 칭찬을 해줄 텐데 그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좀 어렵더라.
子: 내가 하는 것이 뭔지 아는 것 자체가 좋다. 아빠가 집에서 인터넷 바둑을 두시려면 혼자서는 두기 힘드시니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바둑을 알아야 도와줄 수 있는데 누나가 눈이 되어 주고 있다. 예전에는 나도 도와드리곤 했는데 프로기사가 되고 나서는 집에 오면 쉬라고만 말씀하신다.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장점이고 기쁨이다.
단점이랄 것이 딱히 없는데, 아 있다! 성적이 안 좋을 때 수고했다고 문자로 말씀하시는데 씁쓸하다. 위로 문자인 것을 아는데도 기분이 그렇다.
●…아빠의 열정
父: 어린 시절에 실명하기 전에 바둑을 접했는데, 바둑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는 못했다. 상훈이가 프로기사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경험도 쌓고, 인맥도 넓히고 싶은 마음에 바둑학과에 진학도 했다.
바둑은 매일 둘 수 있으면 좋은데 매일 둘 수 있는 환경이 안된다. 졸다가도 바둑 생각을 하면 잠이 깬다. 보이지 않으니 더 애착이 심해지는 것 같다.
요즘은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도우미 선생님이 오셔서 인터넷 바둑을 둘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다.(시각장애인용 바둑판에 바둑을 두면 도우미 선생님이 착수를 해주고, 상대방이 착수를 하면 다시 선생님이 바둑판에 다음 수를 놓아준다) 오전에 3판, 오후에 2판을 두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예전에는 제한시간을 20분 정도로 해놨는데 요즘은 속기바둑을 많이 둬서 제한시간을 5분으로 설정하다 보니 많이 진다. 7단에서 버텼는데 이제 5단까지 떨어졌다. 하하하!
바둑은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을 다 잊게 만든다. 바둑만 두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몰입하다 보니 누가 말을 시켜도 모를 정도다. 바둑은 세상과 어울릴 수 있는 지름길이다.
子: 바둑을 좋아하시는데 명지대학교 바둑학과까지 진학하셨다. 어떻게 저렇게 바둑을 좋아하시나 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시다. 시각장애인바둑으로 최강이시니.
나도 바둑이 재미있어서 한 것이 맞는데, 프로가 되기 전에는 재미 보다는 ‘꼭 해야 하는 것’으로 분류가 되곤 했다. 평생 한 가지에 몰두하시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아빠라는 사람 자체가 대단한 것 같다. 눈을 감아 보면 도저히 뭘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려운 상태로 몇 십 년을 살아오셨다. 내가 20살 때 안보였으면 이렇게 잘 살 수 없을 것 같아. 눈이 보이지 않으면 정신으로 살아가셔야 하는데, 바둑 말고도 평소에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것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서로의 존재
父: 말이 필요 없다. 자식들은 부모한테 다 똑같다. 내가 걱정한다고 되는 일은 없다. 상훈이가 이제 술도 조금씩 마시고 그러는 것 같은데, 이번 추석에는 집에 오면 술 한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
子: 내가 뭘 해도 걱정해주신다. 엄마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필요한 것 없냐’이고, 아빠는 ‘힘드냐’이다. 어떤 마음에서 물어보시는 건지 알 것 같다. 걱정해주시는 모든 것들이 감사하다.
(한참 생각을 하더니)
"그냥 적어주세요.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진짜 제가 한 말이라고 써주세요."
총 댓글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