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진이 8년 만에 농심신라면배 대표선수가 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기분이겠다.
14시에 시작된 대국은 18시27분에 원성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창호에게도, 원성진에게도 꼭 같은 8년 만의 농심신라면배 대표로의 도전이었다. 우리는 이창호를, 원성진을 모두 응원했다.


두 대국자는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곧장 돌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바로 첫 수부터 복기를 시작했다. 복기가 끝난 것은 30가량 시간이 지난 뒤였다.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이 찐하게 남았을 이창호는 대국장을 빠져 나갔고, 원성진은 잠시 숨을 고른 뒤에 인터뷰에 임했다.
오랜 시간 대국에 임했고, 복기도 길어졌는데 힘들겠다는 말에 “힘들긴 하지만 이겼으니 뭘 해도 좋다”며 환한 미소를 보냈다.
원성진은 8년 만에 농심신라면배 본선 무대에 올랐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았는데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다.
“기쁘다. 예전에는 올라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뒀는데 최근에 대표로 올라간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도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임하지는 않았다. 한판한판 두다 보니 운이 좋게 올라가게 된 것 같다”

5회에 출전해 3승, 7회에서 1승, 8회와 13회에서도 출전했다. 4차례나 출전했던 농심신라면배다. 그립지 않았는지.
“대표로 선발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자체로 올라가기 힘든 기전이고 글쎄... 뭐 특별히 대표가 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예전에는 (한국이 잘 했기 때문에) ‘알아서 우승하겠지’라는 이런 마음이었는데, 최근에는 응원하게 되는 입장이었다. 이번에 선수로 뽑히게 됐으니까 한국이 반드시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
원성진은 2회전부터 출전해 박상진, 한웅규, 윤찬희, 목진석, 신민준을 차례로 누르고 조별 결승에 올랐다. 항상 같은 마음으로 두고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대표선발 준결승과 결승에서의 마음은 분명히 다를 것 같다. 준결승은 농심신라면배에서 맹활약을 펼친 신민준이었다.
“어제 신민준9단하고 두기 전 까지는 농심배에 올라간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오늘 두기 전에는 이 판만 이기면 올라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민준을 누르고 올라오니 예선 결승 상대자는 이창호였다. 상대전적에서도 이창호가 11승8패로 앞서고 있었는데 상대자를 알고 나서 어땠을까.
“누구랑 두더라도 다 똑같아서 큰 느낌은 없었다. 이창호9단은 기풍상 장고도 워낙 잘 두시고, 여전히 잘 두시는 것 같았다. (좀 더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는지) 이창호9단이랑 둬서가 아니라 중요한 판이라서 누구랑 둬도 같은 마음으로 뒀을 것이다”
오늘 긴 바둑을 뒀다. 4시간 30분 가량 이어진 이창호와의 대결을 돌아본다면.
“원래 초반에는 계속 좋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중반까지도 좋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팽팽했나, 나빴나) 팽팽하다가 상변 전투에서 흑이 잘 뒀으면 내가 좀 나쁜 흐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전에서 상변의 흑을 잡는 모양 비슷하게 돼서 그때는 확실히 좋다고 생각했다. (중반에는 어땠는가) 바둑은 엄청 복잡했는데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바둑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변화가 많아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6판의 대국을 연달아 이겼다. 선발전 치르면서 어려웠던 판이나 기억에 남는 판이 있을까.
“쉬운 판은 한판도 없었고, 매판이 중반까지 만만치 않다가 중종반에서 대부분 이겼다. 어제 신민준9단과 바둑은 계속 좋았는데 마지막에 질뻔했다. 계속 첫판부터 완승이라고 할 판은 없었고, 중반에 다 이겼다”

30대 기사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바둑팬들은 즐겁다. 특히 바둑팬들에게 영원한 ‘송아지삼총사’라면, 아니 ‘황소삼총사’라면 반가움이 두 배가 된다.
“오늘 이창호9단이 이겼으면 팬들이 더 즐거워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30대 기사들이 아직은 승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승부를 하는 노장 기사들이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농심배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1985년생 원성진을 떠올리면 ‘송아지삼총사’라고 불리는 동료 박영훈과 최철한의 모습도 함께 생각난다. 예전처럼 함께 연구도 하기도 할까.
“보기는 자주 보는데, 대부분 혼자 바둑 두고 인공지능 돌려보는 것이 추세기 때문에 같이 연구하는 것은 최근에는 많이 없는 것 같다”
함께 세계무대를 주름잡던 박영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대회 결승에 올랐고, 최철한은 포커플레이어도 겸하고 있다. 같은 30대 동료로 친구들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떨지.
“나는 다른 것은 하지 않고 바둑만 하고 있다. 영훈이도 옛날이랑 변한 것도 없는 듯 하고, 철한이도 최근에 물어보니 바둑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더라. 다들 아직 승부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다”

한중천원전에서, 삼성화재배에서 우승을 하고 LG배에서 준우승을 하는 등 이름을 널리 알린 원성진이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다. 10대와 20대, 30대의 바둑은 어떻게 다를까.
“바둑을 졌을 때는 나이가 많다고 덜 아프고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옛날에는 티를 냈다면, 지금은 속으로 삭히려고 한다. 기량 자체는 나이가 들어도 줄지는 않는 것 같다. 본인이 관리하고 공부만 한다면 바둑은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나이가 들면 기복이 좀 더 생기는 것 같다. 아무래도 큰 실수가 자주 나오고 그러다 보면 승부에 대한 기복 같은 것이 생기는 것 같다. 컨디션 관리 보다 바둑으로 성적을 내려면 자기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옛날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은데, 꼭 성적이 그 만큼 따라오는 것은 아니더라.
10대부터 20대는 세계대회 성적도 그렇고 전성기에 가까운 시간들이었다. 당시를 회상해본다면.
“그 때는 세계대회 나가면 진다는 생각은 잘 안했고 세계 최고 기사를 만나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세계대회 나가면 나보다 센 기사들이 많아진 것 같다. 지금은 정신력으로 임해야겠다. ^^”
자기 관리를 잘 한다면 30대도 바둑 하기에 좋은 나이라고 보면 될까.
“아직은 해보는 거다. 아직 포기할 것은 아니니까. 힘 닿는 때까지 해볼 생각이다”
인공지능 바둑 시대다. 인공지능으로 공부를 하긴 하지만 잘 활용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한다. 원성진도 인공지능의 매력을 느끼고 있을까.
“인공지능이 나오고 생각을 하지 않게 돼서 문제다. 바둑을 보고 자기만의 생각을 한 다음에 인공지능을 보는 것이 좋은데 답을 먼저 보게 되니 좋지 않은 공부법 같다. 생각을 먼저하고 답을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농심신라면배 대표선수로 4차례 출전한 바 있는 원성진은 5회에 출전해 3승을, 7회에서는 1승을 거둔 바 있으며 8회, 13회에도 대표 선수로 출전했으나 승리는 거두지 못했다. 8년 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기분이겠다. 단체전으로 21회를 맞은 농심신라면배 태극마크다. 목표를 크게 잡아보는 것은 어떨까.
“목표를 정하지는 않았다. 초창기에 농심배에 출전할 때는 한국이 우승하는 분위기라서 몇 연승하겠다는 말도 하고 그랬다. 그 때는 어렸으니깐 그런 말을 했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중국한테 조금 밀리는 감도 있고 정말 한판 이기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국한테는 한 판만 이기면 제 몫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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