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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신]

'녜웨이핑, 커제'가 말하는 중국 바둑 변천사

번역=김형환2019-09-14 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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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일보사 체육부위챗공식채널은 신 중국 건립 70주년을 맞아 5월초 부터 '70년, 함께 하는 신-구 세대 체육인의 대화' 라는 주제로 체육인을 초청하여 대담을 구성했습니다.

신-구 세대를 대표하는 바둑 기사 녜웨이핑과 커제를 초청하여 신 중국 바둑 발전에 대해 이야기를 함께 하였습니다.

 

 


바둑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오랜 세월동안 쇠퇴하지 않고 전수되어 발전해 왔다. 하지만 신 중국 건립 초기만 하더라도 중국 프로기사의 수준이 낮았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중국 원로 천이 선생은 “삼 천년의 역사를 가진 유구한 문명의 바둑을 새롭게 하자” 고 여러 차례 외쳤다. 그 이후로 중국 바둑은 부흥의 길에 올랐다.

세월이 흘러 바둑계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중일 슈퍼대항전의 철의 수문장 녜웨이핑, 22세에 세계대회 7회 우승을 차지한 커제까지, 대대로 내려온 대기사는 뛰어난 기예로 눈부신 페이지를 써 내려왔다. 중국 바둑은 이미 세계 바둑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녜웨이핑: 1952년 허베이선저우시에서 태어났다.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전국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1984년부터는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주장으로 출전하여 중국의 3연패를 견인했다. 1988년 ‘기성’ 칭호를 받았다. 현재 중국바둑협회 부주석을 맡고 있다.

 


 

▷커제: 1997년 저장성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바둑에 입문하여 유명세를 탔다. 2015년 백령배에서 세계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바둑 역사상 7회 우승을 차지한 최연소 기사이다. 2017년에는 22연승을 기록했으며, 40개월 연속 세계랭킹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 약자에서 세계 최고가 될 때까지
1950-60년대 중국기사들은 일본의 초일류 기사들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중국 국내 첫 정식 바둑대회에 참가한 기사의 숫자는 30명을 넘지 못했다. 바둑이 다시 부흥하면서 이 기록은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

 



▶녜웨이핑: 신 중국 건립 초기에 중국 국내 바둑팬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1961년 일본바둑 대표팀이 중국에 방문했을 때, 일본 선수단에 포함된 프로 5단의 할머니가 당시의 중국의 최정상급 기사들을 휩쓸어버렸다. 몇 년 뒤에 이런 양상은 다소 바뀌었다. 우리의 실력이 좋아지면서 심리상태도 변화됐고, 중국기사들은 일본기사들과 맞설 수 있게 됐다.

천이 선생이 “나라가 흥하면, 바둑이 흥한다”라고 하셨다. 중국바둑의 진정한 도약은 개혁 개방과 함께 한 것이다. 이전에는 바둑이 낙후되어 있었고 국력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개혁 개방으로 국가가 부유해지면서 바둑계에도 인재가 많아지면서 점차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커제: 어려서 바둑을 배웠을 때는 한국 바둑이 우위를 점하던 시기였다. 그 때는 내 자신의 바둑의 기량 향상에 전념하면서 언젠가는 세계대회 무대에 올라 나라를 빛낼 수 있기를 바랬다. 예전의 바둑계에는 전성기 시절의 녜웨이핑이나 한국의 이창호와 이세돌과 같은 실력이 특출하게 뛰어난 기사들이 있었다. 현재 바둑계에는 경쟁이 더 치열하다. 실력이 상대적으로 평준화되어 세대교체가 더 빠르다. 내가 차세대 리더라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바둑을 두면서 중국바둑을 위해 분발하고 싶다.


2. 무관심에서 바둑의 붐까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중일 슈퍼대항전은 중국바둑의 도약의 전환점으로 꼽힌다. 녜웨이핑이 중국의 3연패를 이끌며 많은 이들이 녜웨이핑을 따라 바둑의 길을 걸었다.

 



▶녜웨이핑: 당시 일본바둑은 정점에 있었고, 우리와의 실력차는 상당이 컸다. 비록 내가 몇몇 일본기사들에게 성적이 조금 좋았으나 일본 초일류 기사들에게 한판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제1회 중일 슈퍼대항전이 열리기 전 바둑팬의 90%가 일본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기사들은 예상 외로 실력을 잘 발휘하여 기념비적인 승리를 얻었다. 중일 바둑계를 뒤흔들었을 뿐 아니라 민족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바둑은 양측이 정장을 입고 하는경기였는데 제1회 중일 슈퍼대항전 때 내가 중국 탁구팀을 찾아가 ‘중국’이라고 새겨진 스포츠셔츠를 빌려 내 신념과 결의를 표했다. 나는 마지막에 일본의 주장 후지사와를 꺾었고 사람들은 또 한번 감격하며 “중화부흥”의 구호를 외쳤다. 그 해에 바둑을 보던 많은 젊은이들도 바둑 애호가가 되었다.

▷커제: 네웨이핑 사범님은 그 시기에 중일 슈퍼대항전에서 3연패에 성공하며 불가사의한 9연승을 기록했다. 우리 아버지 세대를 고무시켰다. 당시 어디를 가도 바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바둑에 대해 알고 바둑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 시대를 배경으로 중일 슈퍼대항전의 영향력과 관심은 스포츠의 범주를 넘어섰고, 이러한 성취는 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 때부터 중국바둑은 일본바둑을 추격하기 시작하여 한국바둑과 경쟁하게 되었다. 점점 강해지면서 세계가 우리의 실력을 주목하게 했다.


3. 중국바둑의 황금시대
1996년 이후 지금까지 중국기사들은 43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대다수의 세계대회를 중국이 차지하면서 중국바둑은 ‘황금시대’를 맞았다.


 



▶녜웨이핑: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세계바둑계는 한중일3국에서 한국바둑의 독주로 변했다.중국바둑은 2005년부터 환골탈태하기 시작하여 구리로 대표되는 신예기사들이 한국기사와 승부를 겨루기 시작했다. 분수령은 2013년으로 중국기사가 한 해에 6개의 세계대회를 석권했다. 90후의 인재들이 등장하며 빛을 발했고 중국바둑은 완전히 변화했다. 이제는 중국바둑이 한국바둑과 일본바둑보다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나라가 부유하고 국민이 강해야 스포츠도 강해진다. 이런 점에서 중국바둑은 갈수록 좋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제: 나는 이 길을 걸어오면서 언제든지 다른 사람에게 추월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항상 일깨워 주었다.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오직 두 글자만이 있다. 바로 ‘노력’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대회 우승이다. 나는 정상에서 좀 더 오래 남길 바란다. 내가 정말 바둑을 잘 둘 수 없을 때가 되면 바둑 보급에 관한 일을 해서 바둑을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내가 바둑사업에 미력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가 바둑을 더 좋게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바둑에 관심을 가지고 바둑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사: http://sports.sina.com.cn/go/2019-09-12/doc-iicezueu5256666.shtml, http://paper.people.com.cn/rmrb/html/2019-09/12/nw.D110000renmrb_20190912_2-1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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