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승리 인터뷰를 하는 두 기사. "지는 건 상관 없는데 무기력한 모습은 보이지 말자"는 아내의 조언이 힘이 되었다는 백홍석 9단(오른쪽)이고 "저는 특별한 조언을 안 해주는 것 같다"는 이창호 9단이다.
정관장천녹 최명훈 감독은 후반기를 시작할 때 선수들에게 "전반기와는 반대로 한 번 해보자"고 말했다고 한다. 최 감독 스스로가 "농반 진반이었다"고 밝혔듯이 큰 무게를 두지 않고 한 얘기였다. 이대로 끝나면 너무 서운하니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뜻에서 한 말.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전반기를 1승6패, 꼴찌로 마친 팀이 후반기 들어 정말로 '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전반기 4라운드까지의 성적이 1승3패. 후반기 들어 4라운드까지 거둔 성적이 3승1패. 마치 자로 잰 듯한 반전의 행보다.

▲LG배를 우승한 신민준 9단이 곧장 첫 대국에 나선 경기. 탈락 위기의 정관장천녹이 지난 경기 셀트리온에 이어 연속 1위팀을 잡는 이변을 연출했다.
'지면 탈락'인 정관장천녹이 이번에는 한국물가정보를 꺾고 생명을 연장했다. 지난 경기 셀트리온에 이어 2연속 선두팀을 꺾은 것이다. 정관장천녹은 5일 밤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0-2021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1라운드 2경기에서 접전 끝에 한국물가정보를 3대2로 눌렀다.
주장 이동훈 9단의 선취점에 '사즉생'의 각오로 싸운 두 노장이 힘을 보탰다. 46세의 이창호 9단이 23세의 젊은 강자 박하민 8단을, 35세의 백홍석 9단은 동갑내기 친구 허영호 9단을 각각 물리치며 팀 승리에 필요한 3승을 합작했다.

▲4라운드~8라운드까지 5연패를 당한 다음 두 경기를 쉬었던 이창호 9단이 2시간 장고판에 출전해 랭킹 20위의 파릇한 강자 박하민 8단을 꺾었다. 한 번도 불리한 적이 없었던 완승의 내용. "그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이번에도 빠질 줄 알았는데 그냥 넣어준 것 같다"는 국후 소감이 있었다.
부진한 5지명 문유빈을 상대팀 주장 신민준 9단에 붙인 오더 덕도 봤다. 그로 인해 세 판에서 상대전적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그 모두가 승리로 연결됐다.
경기 전 이동훈 9단이 안정기 6단에게 2전 2승, 이창호 9단은 박하민 8단에게 2승1패의 우위였다. 4국에 등판한 백홍석 9단도 허영호 9단에게 5승4패였던 우위가 결승점으로 이어진 결과. 지난 경기에서 신진서 9단을 꺾은 데 이어 연속 팀 승리를 도맡은 백홍석 9단은 오뚜기 같은 대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 '신진서 9단을 이긴 다음 팬들로부터 엄청난 문자와 전화 응원을 받았다. 기사로서 계속 그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한 백홍석 9단. 착수하는 손길에서 혼신의 기백이 느껴진다.
한편 첫 세계대회 우승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곧장 대국에 나선 신민준 9단은 부담스러웠을 문유빈 4단과의 대국을 그런대로 잘 마무리했다. 아직 뜬 기분이 남은 상태에서 어떤 경기를 펼칠까 관심이 집중된 경기였다.
중반까지 문유빈의 선전에 막혀 고전하는 듯했지만 좌상귀 패를 통해 단번에 역전했다. 1시간 37분, 219수 만의 불계승. "큰 승부를 치른 후 흔들리는 기미가 보였지만 수읽기의 정확도에서 큰 차이가 났다"고 평한 유창혁 해설자. 3경기를 남긴 상태에서 시즌 성적은 8승3패가 됐다.

▲ LG배를 우승한 신민분의 무게감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 보일 수밖에 없다.
우승 후보들을 연달아 꺾으며 4승7패가 된 정관장천녹은 남은 경기 전승이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이어갔다. 반면 9승으로 달아날 기회를 놓친 한국물가정보는 잠시 찾았던 1위 자리를 셀트리온에 내주고는 2위로 내려앉았다. 선두팀이 잇달아 저격당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가장 기뻐할 팀은 3위 바둑메카의정부가 아닐까.
그 바둑메카의정부(6승4패)가 다음날인 6일 최하위 킥스(1승9패)와 11라운드 3경기를 벌인다. 이긴다면 8승의 앞자리 두 팀을 한 게임차로 따라붙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진은 설현준-안성준(0:2), 박상진-한상훈(1:1), 김지석-박영훈(10:10), 이원영-김정현(3:2), 백찬희-백현우(0:0, 괄호 안은 상대전적).
2020~2021 KB리그의 팀상금은 우승 2억원, 준우승 1억원, 3위 6000만원, 4위 3000만원. 상금과는 별도로 정규시즌 매판 승패에 따라 장고판은 360만원과 70만원, 속기판은 320만원과 60만원의 대국료를 지급한다.
제한시간은 장고 1국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1회가 주어지며, 장고 2국은 각자 1시간에 1분 초읽기 1회, 속기 대국은 각자 10분에 40초 초읽기 5회로 펼쳐진다. KB바둑리그의 모든 경기는 매주 목∼일 18시30분부터 바둑TV를 통해 생중계되며, 타이젬 대국실에서 수순 중계한다.

▲같은 스타일의 대결에선 아무래도 랭킹이 높은 쪽이. 38위 안정기 6단에게 3연승을 거둔 6위 이동훈 9단(오른쪽).

▲역시 완력으로 알아주는 두 기사의 대결에선 강동윤 9단(오른쪽)이 한판승으로 김명훈 7단을 뉘며 상대전적 3승2패.

▲한 주 전 셀트리온의 패배에 기뻐했던 한국물가정보는 같은 처지가 되면서 조금 머쓱해졌다.

▲다음 라운드에선 포스코케미칼과 대결하는 정관장천녹. 유창혁 해설자는 "부진했던 이창호 9단과 백홍석 9단이 마음을 비운 승부를 하면서 놀라운 대국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2월 랭킹이 62위까지 추락하면서 랭킹제 시행 이후 처음 스승 조훈현 9단(61위)에게 윗자리를 내준 이창호 9단. 팀도 본인도 벼랑끝에 몰린 상황에서 집중력의 농도가 짙어질 수밖에 없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두 개의 장벽, 커제와 신진서 컴플렉스에서 벗어났다.
▲장고A: 2시간. 장고B: 1시간(초읽기 1분 1회). 속기: 10분(40초 초읽기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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