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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타]

프랑크푸르트 바둑 클럽에 가다

한상대 교수에게 듣는 유럽 바둑 소식7

정연주2006-05-04 10:4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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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지에 한국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 힘 쓰는 한상대 교수. 한 교수는 "해외에 나가 보면 바둑보급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소홀히 해 왔는지 누구나 금방 느낄 수 있다. 늦은 감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한다.

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바둑 보급을 위해 유럽행을 택했다. 3월 25일부터 4월 10일까지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가 열리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에 방문한 것(관련기사보기).

그는 3월 24일 한국에서 바둑의 열기가 식지 않는 독일을 향해 떠났다. 그와 함께 한해원 2단과 이하진 2단도 동행했다. 약 15일간 유럽 각지를 돌며 있었던 일들을 기록했다.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가 열리고 있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소식을 한상대 교수에게 듣는다.




2006년 3월 30일

다음날 아침 우리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필립은 자기가 마신 빈 맥주병 한 박스를 들고 나가 쓰레기 처분 하는 곳 옆에 갖다 놓는다.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쓸쓸해진다. 필립과 헤어져 우리는 기차로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담스퀘어 바둑회장인 클레멘 스(Clemens Winklemaire)와 만나기로 되어 있다.
담슈타트(Darmstadt) 는 프랑크푸르트와 하이델베르크 중간에 위치한 소도시인데 고등학교 교사인 클레멘스 때문에 바둑클럽 활동이 활발하다. 그는 바둑이 3급 밖에 안 되는데 중고생 제자 300명에게 바둑 지도를 하고 있다. 클레멘스는 자기 보다 실력이 세어진 제자의 건방진 행위에 정이 떨어져 요즘 바둑을 안 두고 다른 취미인 록 밴드에서 드럼을 치는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3명이 다녀간 뒤에 다시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어제 메일로 이런 사실을 알려 왔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우리가 하이델베르크로 가려면 칼스루어라는 곳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안내 방송이 독일어로만 나오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내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돌아 가라고 한다. 우리는 한 시간쯤 더 지나 와서 프랑스 국경에 가까이 있는 킬(Kehl)이란 곳에서 내렸다. 내가 클레멘스에게 전화를 걸어 기차를 잘못 타서 킬에 와 있으니까 그 시간에 하이델베르크는 못 간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 독일어 발음이 키일(Kiel) 이라고 들린 모양이다. 키일은 독일 최북단 덴마크 옆에 있는 곳이다.


▲ 한상대 교수, 이하진 2단, 클레멘스.
클레멘스는 곧 프랑크푸르트의 크리스에게 전화하여 이 소식을 전했다. 크리스는 우리를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특별 바둑 모임을 주선 했는데 우리가 기차로 6시간 떨어진 곳에 있으므로 큰 일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걱정 끝에 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우리가 모임에 못 올 것 같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을 즈음 나는 다시 되돌아 가는 기차를 타려고 필사의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골에다가 프랑스에 가까이 있는 마을이라 영어가 안 통한다. 나는 기차를 잘못 타서 열 받아있고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화가 나 있는데 해원이와 하진이는 무엇이 좋은지 계속 낄낄거리기만 한다.

다행히 기차가 곧 와서 한 시간 후에 우리는 시간이 너무 지연되어 하이델베르크를 포기하고 대신 담슈타트에 갔다. 클레멘스의 집이 있는 곳이다. 클레멘스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녀서 영어가 아주 유창하다.

나이는 30세. 총각이다. 그의 특징은 말 총 머리인데 이번에 만나니까 예수와 같은 머리를 하고 있다. 레오날드 다빈치가 그린 예수 초상화와 거의 비슷하다. 하진이가 예수 같다고 하니까 자기 학생들도 그런다고 대답 한다. 자기 컨셉트를 그렇게 잡은 것 같다.

나는 클레멘스에게만 걸리면 최소 두 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그는 걷는 것과 설명하는 것이 취미라 잘 못 걸리면 네 시간도 넘어 걷게 된다. 3년전에는 너무 더운데다가 우리 학생 중 걷기가 불편한 사람이 있는데도 '금방'이라고 하면서 8km를 돌았다. 그에게 걸리면 최소 그 정도는 걸어야 한다. 준비 해온 자료들을 읽으면서 열심히 설명하는 그를 보면 원망할 수도 안할 수도 없게 만든다.

클레멘스는 우리에게 두 시간 이상 시간이 남으니까 담슈타트를 돌아보자고 한다. 나는 속으로 또 얼마를 걸어야 하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는 우리를 먼저 옛 영주 별장이 있는 공원엘 데려 갔다. 그는 이 곳에서 매년 담슈타트 바둑대회를 여는데 지난 번엔 성인부에 120명, 어린이부에 20명이 출전했다고 자랑한다. 공원도 아름답고 대국장도 훌륭하다. 그 다음 그는 우리를 건축가 촌에 데려 갔다. 옛날 이 곳 영주가 유럽 각지 건축가들을 불러모아 이 마을을 건설 했는데 건축가 들에게는 자기가 사는 집을 직접 설계하고 지어서 살도록 했다. 건축가들이 최선을 다한 건축물이라 그런지 모두가 특징이 있고 멋지다.

건축가 촌 옆에 지은 아방가르트 초 현대식 전위예술 아파트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던 건축물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전망을 보기 위해 결혼 탑 7층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자고 했더니 클레멘스가 완강히 거절하는 바람에 달팽이 식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했다. 우리 일행은 프랑크푸르트에 차로 30분 간 달려 와서 다시 비를 맞으며 시내를 걸어 돌아 다녔다. 2천여년 전에 로마 지배 시절 목욕탕 자리, 옛 시청 건물, 독일 연방 의회 건물 등을 돌아 본 후 바둑 모임 장소로 갔다.


▲ 현대식 전위예술 건물에서 이하진 2단과 한상대 교수.

프랑크푸르트는 북부 라인강(江)의 지류인 마인쯔강(江)을 끼고 있는 상업도시이다. 문호 괴테의 출생지로 18세기까지는 국왕의 선거 및 대관식이 거행되던 곳이었다. 현재의 독일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2차 대전 중 도시의 83%가 파괴되어 그 자리에 현대식 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고 많은 은행의 본점들이 이 곳에 있다. 근년에 와서는 교통의 요지로 이 곳 공항은 유럽의 관문이다. 우리에겐 프랑크프루트(손가락) 소시지(Sausage)로 유명한 곳.

바둑 클럽에서 20여명의 현지 바둑인들이 우리를 반긴다. 나는 이 곳 클럽을 7~8차례 이상 와서 모두 낯이 익다. 다만 항상 나를 반기던 미모의 짜오페이 6단이 상해에 가서 살고 있어 안보였다. 섭섭했다. 해원이와 하진이가 7~8명씩 맡아 다면기를 두고 있는 동안 나와 바둑 회 간부 몇 명은 앉아서 바둑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이 베를린에서 우리가 한 일을 샅샅이 알고 있는 걸 보니 독일 바둑계가 얼마나 좁은지 알겠다. 바둑행사가 끝난 후 나는 팀 네 집에 해원이와 하진이는 크리스네 집에 숙소가 배정 됐다. 주차가 힘들어서 팀이 3블럭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는 바람에 나는 비를 쫄딱 맞았다. 팀네 방은 없는 바둑책이 없다. 일본에서 출판된 바둑책은 다 산 것 같다. 팀의 부인까지 합세하여 바둑 얘기를 새벽 1시까지 하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독일 바둑계는 특징있는 바둑인이 많다. 발두인이라는 4급 두는 베를린 사람은 전직이 정원사 였는데 전문 학교에서 아동 교육학을 이수 한 후에 초등학교 어린이에게 바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제자가 600명쯤으로 늘어 자기의 직업이 됐다. 제자 300명의 클레멘스, 바둑 룰만 공부하는 베를린의 야시크, 바둑 책을 몇 권 쓴 프랑크푸르트의 딕펠트 3단과 바둑에 대한 자료는 무엇이든지 다 있는 크리스, 하노버의 겔락, 함브르크의 데이빗, 드림랜드 한국 행을 꿈꾸는 룽거씨 등 이름을 열거 하려면 한이 없다. 나중에 서양 바둑 광들에 대한 얘기만 모아 내가 책으로 내면 인기가 있을 것 같다.

(한상대 교수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 소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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