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각지에 한국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 힘 쓰는 한상대 교수. 한 교수는 "해외에 나가 보면 바둑보급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소홀히 해 왔는지 누구나 금방 느낄 수 있다. 늦은 감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한다.
대회 이튿날. 주최측에서 오늘은 오후 5시가 지나서 대회장에 와 달라고 한다. 해원이와 하진이가 유럽에 처음이라고 했더니 꼭 필요할 때 빼고는 최대로 우리에게 자유시간을 주려고 하는 배려가 느껴진다. 이 금 쪽 같은 시간을 어떻게 쓸까 하고 망설이는데 하진이 고모부가 안내를 맡겠다고 한다. 하진이 고모부는 프랑스에 유학 왔다가 프랑스에 살게 된 케이스. 파리에서 18년을 살았다고 한다. 한인 바둑인의 대부분이 유학생 배경을 갖고 있다. 현재 파리의 한국인 1만명 중 8천 명쯤은 유학생이라고 한다. 신기한 일은 하진이가 고모부와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는데 신통하게도 많이 닮았다. 내가 하진이에게 “너희 아버지라고 해도 사람들이 다 믿겠다” 고 했더니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40분쯤 달려 베르사이유 궁으로 먼저 갔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절대 왕권을 휘두를 때 지은 곳이라 사치의 극을 달리고 있다. 전 유럽이 이 궁을 모델로 삼아 궁전을 따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르사이유에 도착 하니까 비는 쏟아지고 입장권을 사려는 줄은 한없이 길다. 표를 사려면 약 1시간 30분은 걸리겠다고 한다. 빗속에서 내가 3명에게 “내 수읽기로는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데 나는 이 곳에 여러 번 와서 안 봐도 아쉽지가 않지만 너희들은 어떻게 하니?” 하며 약을 올렸다. 그 때 하진이 고모부가 “이 곳에서 다시 약 60Km쯤 가면 나폴레옹과 조세핀이 살던 퐁텐블로 라는 궁이 있는데 내부는 비슷하니까 그리로 가자.”고 한다
가는 길에 바르비종이란 마을에 들렸다. 밀레가 만종, 이삭 줍는 여인 등을 그린 곳이다. 밀레의 작업실이 일요일이라 닫혀있어 서운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을 걷는 기분은 낭만적이었다. 마침 비가 오기 시작해서 우리는 차로 뛰어와 퐁텐블로로 이동했다. 마침 오늘이 입장료가 무료라고 하고 사람도 얼마 없다. 운이 좋다. 우리는 궁 내부를 자세히 돌아 봤는데 화려함에 있어서는 베르사이유 궁 이상이다. 다만 규모가 작을 뿐이다. 하긴 베르사이유의 트레이드마크인 '거울의 방'이 없다. 정원도 베르사이유의 축소판이다. 우리는 파리로 돌아 와서 어제 점심에 갔던 고향이란 한식집에 오후 3시에 다시 갔다. 영선이가 그 집 깐풍기에 반했기 때문이다.
2위는 빠빠졸루(Benjamin PAPAZOGLOU, Rennes club) 4단, 3위에는 케흐바(Alain KERBRAT, Toulouse club) 4단이 한국행 상금을 획득했다. 트로피 증정과 상금 증정 때 입상자들이 너무 좋아한다. 시상식 후에 약속대로 우승자 말레크에게 하진이가 두 점 특별 지도 대국을 했다. 무대 위에서 둘이 두고 있으면 한 사람이 옆 자석 판에 수순을 옮기고 해설은 중국 프로인 환후이 2단이 맡았다. 환후이 2단이 중반에 우세를 잡은 하진이의 완승 국이라고 평하며 하진이가 “강하다”고 한다. 이 동안에도 영선이와 해원이는 지도 다면기를 두느라고 바쁘다.
특별 대국이 끝난 후 나와 프랑스 바둑협회 간부 7~8명이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금년에 새로 선출된 집행부로 의욕이 넘쳤다. 회장(Emeric SALMON)과 부회장(Cyril SIMONOT)이 다 젊다. 에머릭 회장이 파리에 안 살고 있어 부회장 시릴이 우리를 항상 돌보았다. 솔본느에서 박사 과정에 있는 엘리트다. 내가 이름을 잘 못 외워서 '머리에 끈 맨 사람'이라고 칭 할 때마다 해원이와 하진이는 웃는다. 그런데 왜 항상 머리에 끈을 매고 다닐까. 그들은 세계 최강의 한국 바둑계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싶어했다. 환후이 2단이 파리에서 세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데 협회가 월급제로 고용한다고 한다. 목적은 약 30명의 어린이 유망주를 뽑아 그들에게 바둑을 매일 가르치는 일이라고 한다. 1년 후에는 그 중에서 10명만 추려내 다시 1년을 훈련하여 전부 아마6단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나에게 “2~3년 후에는 유럽 바둑계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내 바둑영어 교실에서 인성이가 베를린, 영선이가 함부르크등에 진출했는데 왜 독일로만 사범을 보내느냐고 묻는다. 내가 독일이 먼저 요청해 왔다고 대답한 후 파리는 사범을 받는 사정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런 조건이라면 자기네도 한 명을 받겠다고 한다. 이 외에도 한국 바둑 TV와 인터넷의 유럽 진출문제, 프랑스 바둑인의 한국 유학 등이 논의 되었다. 내가 권유해서 명지대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바둑에 관련 된 얘기를 할 적에는 바둑 강국인 한국이 시혜를 베풀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오늘 영선이가 하노버로 떠나는 날이다. 내일 아침부터 언어연수원에 나간다고 한다. 영선이는 나에게 학부부터 배우고 졸업 후에도 역삼동 바둑영어교실에서 1년간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다. 영선이 영어 실력이 느는 속도를 보고 내가 “영선이가 국수를 네 차례나 차지한 일이 우연이 아니다.” 라며 감탄했다. 윤영선 5단은 하노버에서 어학연수가 끝나면 함부르크에 가서 1년 동안 사범으로 지낸다. 조석빈은 베를린으로 가고 황인성은 군대 때문에 한국에 나온다. 영선이와 1년 동안 헤어지자니 섭섭하다. 영선이가 가면서 “교수님 월드컵 때 꼭 구경 오세요!”한다. (한상대 교수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 소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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