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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타]

한국으로 갈 네덜란드 선수들 선발

한상대 교수에게 듣는 유럽 바둑 소식 17-1

정연주2006-05-22 11: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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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지에 한국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 힘 쓰는 한상대 교수. 한 교수는 "해외에 나가 보면 바둑보급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소홀히 해 왔는지 누구나 금방 느낄 수 있다. 늦은 감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한다.

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바둑 보급을 위해 유럽행을 택했다. 3월 25일부터 4월 10일까지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가 열리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에 방문한 것(관련기사보기).

그는 3월 24일 한국에서 바둑의 열기가 식지 않는 독일을 향해 떠났다. 그와 함께 한해원 2단과 이하진 2단도 동행했다. 약 15일간 유럽 각지를 돌며 있었던 일들을 기록했다.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가 열리고 있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소식을 한상대 교수에게 듣는다. 사진은 한해원 2단이 유럽에서 직접 찍어 전달해 준 것이다.

2006년 4월 9일(1)

아침에 하리가 오후 5시경에 대회가 끝날 테니까 그 동안 우리에게 레이든을 안내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네덜란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풍차를 방문했다. 1~2층은 주인의 살림집. 3층부터 공장이다. 7층까지 있고 내부가 꽤 크다. 바람의 힘으로 저 큰 맷 돌과 기계가 돌아가다니. 거기에다 바람은 무한 동력이 아닌가. 옛날에는 네덜란드에 풍차가 1만 5천 군데가 있었는데 지금은 8백개 밖에 없다. 그 당시에는 풍차 집은 그 도시의 유지에 속했다고 한다.


▲ 풍차 위에서.

이 곳 레이든은 램브란트(Rembrandt)의 고향이고 램브란트가 바로 풍차 집 아들이었다. 램브란트의 집이 있던 곳에는 그를 상징하는 풍차가 세워져서 돌고 있다. 올해는 램브란트 탄생 400주년으로 세계 여러 곳에서 그의 특별 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의 그림은 강렬한 힘과 내면을 꿰뚫는 통찰력, 탁월한 빛의 처리 기법으로 아직도 신비로 남아 있다.

풍차를 나와 우리는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하리가 자기 학생 시절 단골 카페를 지나가며 저 집 주인이 자기가 암스텔담에서 공부하다가 1년 반만에 다시 찾아갔더니 첫 마디가 “하리, 자네가 전에 맥주 값 1불 50전 밀린 게 있네.” 했다고 하며 웃는다. 그러나 하리가 나하고 3년 전에는 같은 길을 걸어 가면서는 자기가 학생 때 쫓아 다니던 여자애들 얘기를 신나게 했었다. 오늘은 해원이와 하진이 앞이라 안 하는 것 같다. 그의 별명은 '크로커다일(Crocodile-악어)'이다. 바둑을 순하게 두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무는데 상처가 치명적이라고 한다.


▲ 가운데쯤 멀리 보이는 풍차가 렘브란트 생가.

16~7세기에 래이든은 무역으로 돈을 번 부자가 많아 그들이 자기네 이름만 붙여 주면 다세대 주택을 지어주어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와 살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 4~5백 년 된 그 집들은 가장 고급 주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는 변두리가 지금은 시내 복판이 되고 집들은 아직도 튼튼하다고 한다. 하리가 자기가 찍어 놓은 집에 우리를 데려가서 “내가 은퇴한 후에 살 곳.”이라고 소개한다. 고풍이 나면서 고급 분위기다. 하리는 네덜란드 바둑협회 재무이면서 네셔날 지오그라피의 사진 작가다. 이 곳 바둑인들이 그를 가리켜 세계적인 사진 작가라고 한다. 하리는 몬드리안의 황금 분활 법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 하리 씨의 작품.

그는 몇 년 전 성격이 괴팍하여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는 옛 상사를 매일 병원에 찾아 가서 1년 이상 간병을 해 주었는데 그 사람이 죽으면서 유산을 4백만 불이나 하리에게 남기고 죽었다. 하리는“그 사람이 그렇게 부자인 줄 몰랐다.”고 한다. 거부가 된 하리는 지금도 바둑을 두고 사진을 찍으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아직도 매 주 하루를 형무소에 자원봉사 하러 다니고 있다. 그의 부인은 계속 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 벽에 쓰여있는 세계 각국의 시들 중 하나

레이든 시내를 걷다 보면 비어 있는 벽 면에 세계 각국어로 자기네 시(詩)가 적혀 있다. 시내 장식처럼 보이고 미관상 보기도 좋다. 일본 시도 몇 편 보인다. 100여 국가가 참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시는 눈에 안 띈다. 한글도 자랑 할 겸 있으면 보기가 좋을 텐데. 하리가 자기 부인이 시의원인데 한국 대사관에 연락했으나 아무 답도 없었다고 한다. 대사관 측에서는 한국에 연락해서 시를 고르고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쓰는 작업을 하고 하는 일이 귀찮아서였을까. 문화 수출이 세계화 시대에선 최고의 상품이라는 걸 인식해야 하겠다.

바다 보다 낮은 저 지대가 많은 네덜란드는 돌이 안 나와 거의가 벽돌집이다. 벽돌이 단단해 두 장을 깨던 한국태권도 사범이 이 곳 벽돌은 한 장도 깰 수 없어 격파용은 한국에서 수입해 들어 온다고 한다. 시내를 걷다가 옛 바둑판을 파는 중국 가게가 눈에 띄었다. 바둑 판과 돌이 처음 보는 모양이라 우리의 발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런데 일요일이라 문을 닫아서 못 들어갔다. 하리가 오늘 일찍부터 와있는 바둑인들이 있을 거라고 해서 우리는 시상식 전에 대회장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레이든 시내를 1시간만 돌고 점심을 먹은 후에 대회장으로 갔다. 전에 내가 이 곳에 와서 2시간 코스를 돌았을 때 하리가 “다음엔 3시간 코스로 돌자.”고 했었는데.


▲ 네덜란드 레이든의 거리.

점심을 먹는데 영국의 해리가 나에게 전화 했다. “옥스포드에서 자매도시인 레이든으로, 해리에서 하리로(같은 Harry지만 이 곳에선 하리로 발음) 비슷한 배를 바꿔 타고 순항 중인 것을 축하 한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소식을 알았냐고 물어 보니까 “테오에게 전화가 와서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보니 작년 학술대회에서 두 명이 며칠을 같이 보내 친 한 사이인 것을 내가 깜박 했다. 해리는 또 기차를 놓쳐서 고생했다는 얘기는 유감이라고 한다.

유럽 바둑계가 좁아서 소문이 빠르다. 해리는 한국에 있는 우리 집 사람에게까지 전화하여 내가 네덜란드에서 여행을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레이든 대학에는 내가 여러 해 전에 대학 일로 와서 묵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엔 여기에 유럽 최강 바둑 클럽 중 하나가 있는 걸 상상도 못했었다. 그 후 내가 네 번이나 바둑 일로 여길 찾게 된다. 이 곳도 대학 도시 비슷하고 레이든 대학도 명문이라 옥스포드와 자매 결연을 맺었나 보다.


▲ 네덜란드 대사배 4강전, 첫날 일행을 마중나온 하리 씨가 관전중이다.

대회장에 도착해서 해원이와 하진이가 다면기를 두고 있는 동안 한국행 입상자들이 정해졌다. 1위는 작년에 3장으로 한국에 왔던 허트(Geert Groenen 6단), 2위는 미힐(Michiel Eijkhout), 3위는 멀린(Merlin Kuin 5단)이 했다.
한국 부인과 사는 강자 에밀(Emil Nijhuis 6단)은 아쉽게도 4위에 그쳤다. 허트는 우승 후 자기 동거녀와 오래 동안 포옹을 풀지 않는다. 너무 기쁜가 보다. 이 때 유럽 최고의 바둑 서적, 용품 판매 상 피터(Peter Zandveld)가 오더니 두 여자 프로에게 호주 사람 존 파워(John Power)가 번역한 '무적의 수책(Invincible Shusaku)'를 한 권 씩 선사한다. 영어 바둑 책 중 가장 유명한 꽤 두꺼운 책이다.

시상식과 내 인사말이 있었는데 네덜란드는 교육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영어를 원어민처럼 한다. 그래서 농담을 하면 전체가 동시에 웃는다. 통계를 보면 네덜란드 인구의 67%가 영어를 하고 23%가 3개 국어 이상을 한다. 시골 노인, 농민, 어린이를 빼면 누구나 자기네 말 더치(Dutch)와 영어를 잘 한다고 보면 된다.

우승자 허트와 하진이 간에 두 점 특별 대국이 있었다. 하진이의 5집 승. 대국 후 허트가 나에게 와서 자기가 바보 같은 수를 두었다며 자책을 많이 한다. 오늘 저녁엔 롱엔씨가 우리를 자기 집에 초청했다.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하겠다고 한다. 바둑 외에 요리가 그의 취미 다. 그의 서가에는 온갖 바둑 책을 빼고 나면 제일 많은 게 요리 책이다. 그 다음이 자기 전공인 컴퓨터 책이다.

(한상대 교수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 소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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