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각지에 한국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 힘 쓰는 한상대 교수. 한 교수는 "해외에 나가 보면 바둑보급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소홀히 해 왔는지 누구나 금방 느낄 수 있다. 늦은 감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한다. 2006년 4월 9일(2)
얀(롱엔 씨 이름)이 레이든에 사는 나와 친한 사람들만 같이 초청했다고 한다. 하리, 필립, 빔, 테오 등이다. 이 중 필립(Filip)은 고급 맥주 회사 사장의 외아들이다.그가 맥주 공장 인수 받을 생각은 않고 바둑에 미쳐 있어서 그의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다고 들었다. 네덜란드 맥주 중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것은 하이네켄이다.
우리만 얀(Jan)의 차로 가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자전거로 온다. 우리가 도착하고 20분쯤 후에 자전거 부대가 도착한다. 내가 가본 나라 중에는 네덜란드와 중국이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타는데 중국이 자동차 문화가 보편화 되면서 자전거 인구가 급격히 준다고 한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을 텐데. 얀은 고급 주택가에서 잘 산다. 한국에 다녀 온 후로 얀이 자기 집을 온돌로 뜯어 고쳤다. 돌 바닥인 응접실도 온돌이라고 한다 얀의 부인이 한국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금년에는 바둑 대회에 남편 따라 한국에 오고 싶다고 한다. 얀이 요리한 음식은 맛은 좀 독특한 것은 같은데 양이 적어 우리가 실컷 먹지를 잘 못 했다. 내가 해원이와 하진이에게 “너희들에겐 질 보다 양인데.”하니까 둘이 웃는다. 거의가 185cm가 넘는 거구의 화란 사람들은 이 음식으로 어떻게 배를 채울까? 저녁식사 전에 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는데 해원이와 하진이가 그런 분위기에 이제는 꽤 익숙해 진 것 같다. 식사 후 우리측에서는 서비스로 다면기를 두어 주었다. 이 사람들은 바둑회 간부들이라 일 하느라고 빔만 빼고는 프로의 지도를 아직 못 받았다. 그래서 빔(Wim)은 나와 두고 나머지는 해원이와 하진이가 나누어서 두었다. 밤 늦게 얀이 우리를 호텔로 데려다 주고 작별 인사를 했다. 나만 알라고 하면서 자기가 건강상 이유로 바둑계 지도자 자리를 후배에게 내어 주고 은퇴하겠다고 한다. 그 후 평회원으로 바둑을 즐기려는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네덜란드 협회장만 17년을 했다고 한다. 아까 누군가 나에게 얀이 몇 달 전에 심장마비를 한번 일으켰었다고 한다. 우리 나이로 60이면 서양에선 은퇴 하기는 이른 나이다. (한상대 교수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한국 대사배 바둑대회 소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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