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젬에서는 추석특집으로 '기인' ‘언어의 연금술사'로 통하는 ‘작가' 이외수가 아니라 ‘애기가(愛棋家)' 이외수 씨를 강원도 화천군 다목리 감성마을에서 만났다. 동행한 서능욱 9단과 함께 이작가를 만나 바둑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이외수 작가와의 만남을 소개한다. 분명, 이외수 작가는 강원도 화천을 선계라고 표현했던가. 분명, 속세를 떠나 도착한 선계가 화천이라고 했던가. 벽오금학도의 백발소년이 살고 있을 법한 곳이라고 상상하며 구불구불한 화천 산길을 거슬러올라갔다. 오후 2시. '기인' ‘언어의 연금술사'로 통하는 ‘작가' 이외수가 아니라 ‘애기가(愛棋家)' 이외수 씨를 만났다. 강원도 화천군…, 바로 그 화천의 산속, 다목리 감성마을에서. 그곳에서 그는 선계의 도인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어쩌면 귤중지락(橘中之樂)을 음미하고 있는지도.
º 저는 정석이니, 포석이니 이런 것 잘 모릅니다. 군대에서 막바둑을 배워서…. 군대 훈련동기 중에 장난기가 심한 두 친구가 있었는데 바둑을 즐겨뒀답니다. 항상 내기바둑을 뒀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진만큼 바둑돌을 먹어야 합니다. 하하! 누가 이겼느냐보다 많이 먹느냐가 관심의 대상이었죠. 바둑돌 20개씩 꾸역꾸역 먹는데 대단했습니다. 오죽하면 두 친구는 바둑알을 먹은 다음날에는 뛸 때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난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동료들은 “맛없으면 고추장 발라줄까?”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이런 재미있는 친구들 바둑을 보고 배워서인지 제 바둑은 마구잡이예요. 재미있다. 타이젬에 연재된 '동천홍'이란 소설에서 바둑을 지고 바둑알을 집어 삼켰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있다. 상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의아했는데 실제로 듣고 보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소화가 되려나? 목에 걸리지 않을까? 등등. 이외수 작가의 부인 전영자 씨가 아침에 밖에서 주웠다면서 머루를 주신다. 새로운 맛이다. 함께 주신 황차도 ‘속세'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맛이다. 입안이 참 깔끔해진다. 전영자 씨가 미스 강원 출신이라는 얘기를 감성마을로 오는 도중에 서능욱 9단에게 들었다. 대단한 미인이겠거니, 라고만 생각했는데 몇 마디 나눠보니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마냥 성격도 화끈하다. 부부는 닮는다던데, 그 ‘싸부님'에 그 ‘싸모님'이다. 내년 봄에 여는 50평 짜리 한옥을 가리키면서 “오로지 바둑을 위해서 만드는 거”라고 귀띔하며 “프로기전이나 아마추어 기전을 여기서 하게 되면 아예 암각파둑판을 파겠어요!”라며 적극적이다. º 요즘에는 바둑 TV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대국 시간이 빨라졌죠. 하급자들에게는 아주 좋습니다. 숨이 긴 바둑은 종일 걸리기 때문에 몇 십 분씩 장고하면 딴짓도 못하고 말이에요. 소설도 마찬가지로 호흡이 빨라져야 합니다. 머리 쓰게 만들지 말고 딱 말하면 알 수 있도록. 서능욱 9단은 아마 ‘3초 바둑'이 생기면 매일 우승하실 것 같아요. ^^ 바둑은 갈수록 초속기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속도'가 날로 대우받는 시대, 예와 도의 퇴색을 우려하는 소리도 많다. 바둑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어떨까. º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없어지거나,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바둑의 정신을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급자는 어떨지 몰라도 고수의 바둑은 다르죠. 속기라도 그 안에 다 실려 있을 것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둑을 두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부모와 아이가 손잡고 바둑교실에 가죠. 왜이겠습니까? 바둑의 본질이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요. 나는 이창호가 돈 때문에 바둑에 심혈을 기울이고 박세리가 돈 때문에 골프에 심혈을 기울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바둑이나 골프의 본질을 중시했기 때문에 결국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2006년 8월 21일. 이외수의 감성편지-
함께 동행한 서능욱 9단과는 8년 만의 재회다. 8년 전에는 9점을 깔고 뒀는데 이번에는 7점에 도전. 과연 어떻게 될까. 두둥! 지도대국을 시작하기 전 전영자 씨가 조용히 한마디 건네고 자리를 뜬다. “내가 야무지게 저녁상 차려 놓을게.” º 서능욱 사범님은 이제 연세가 많아졌지만 더 맑아지신 것 같아요? 전 세상을 철없이 살아서…. 그렇지 않나요? ^^ 저는 바둑을 두는 것보다 감상하는 게 더 좋습니다. 바둑을 많이 보니깐 느는 것 같던데요. 프로기사한테 지도대국을 세 번 받았는데 실력이 확 달라지는 것을 느꼈어요. 제 힘으로는 죽었다 깨도 바둑이 안 늘어요. 하하! 또옥또옥-. 집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사진에 담고 있는데 바둑돌 놓는 소리가 들린다. 풍경소리처럼 감성마을 자연과 잘 어우러진 소리. 경쾌하다. 전영자 씨가 잠깐 왔다간다. 식사가 다 되었으니 밥 먹으러 오란다. 대국이 끝났다. 서능욱 9단은 “생각보다 전반적인 전략이 좋아 고전했다”고 말한다. 작가는 “서능욱 9단과 마주 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인데 지도대국까지 받을 수 있어 더욱 행복했다”고 화답한다. “복기 때 말씀하신 바를 염두에 두어 기력을 끌어올리겠다”라는 다짐과 함께. 식사를 하는 도중 동네 주민이 개복숭아를 가져왔다. 감성마을은 지천에 널린 것이 음식인 것 같다. 황차, 머루, 개복숭아. 처음 먹어본 음식들이다. 작가가 “여기는 부지런하거나 게으르거나 다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º 예전에 프로기사한테 지도대국을 받고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 같아서 홍천사는 친구와 대국을 했습니다. 이 친구와는 지는 쪽이 절 10번 하기를 내기조건으로 내걸곤 했는데요. 친구가 4점을 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맞바둑을 외쳤고요. 결국 맞바둑을 둬서 제가 이겼지 뭡니까. 하하! 친구가 옛날 생각을 하고 절 우습게 봤나봐요. 이렇게 하다보면 정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를 것 같다니까요. 도끼자루가 뭐예요, 기둥뿌리가 썩지요. 그날 밤 11시에 두 시간을 달려 친구가 찾아왔더군요. 진 바둑이 생각나서 잠을 못 자겠다고. ^^ 멀리까지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참으로 영광이라고, 작가가 먹을 치겠다고 한다. 시간이 괜찮으냐고 묻고는 서능욱 9단에게 선물할 그림을 그린다. 다시…다시…를 연발한다. 마음에 내키지 않은 표정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태양을 삼킨 진흙소'를 화선지에 그렸다. 금방이라도 고개를 들고 돌진할 것 같은 소. º 요즘에는 외국에도 프로들이 많다지요?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보급만 잘 되면 바둑도 국위선양에 앞장 설 수 있을 텐데요. 외국에도 기원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글 쓸 때 가장 간섭 안 받는 것이 바둑TV입니다. 바둑은 24시간 틀어 놓아도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조용조용하고. º 전영자 씨가 말한다. 여기에 처음 왔을 때는 시끄러웠어요. 귀에 익숙하지 않은 자연의 소리가 들려서요.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이었죠. 계절마다 들리는 새소리도 다 다르니. 오죽하면 냉장고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니까요. 떠날 채비를 하는데 못내 아쉬운지 작가가 “차 한 잔 더 하고 가시죠?”한다. 날은 어두워지고 사위가 고요해지니 모든 소리가 더 크고 선명하게 들린다. 도회지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적막이다. “저 같은 하수가 어떻게 바둑소설을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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