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후 바둑최강국은 어느 나라일까? 대부분의 팬들은 중국을 꼽는다. 물론 최근 한국이 부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중국이 성장을 거듭한 탓이기도 하다. 그 말이 참이라면 한국으로서는 5년 이내에 중국에 맞설 대항마를 준비해야 한다는 역설이 생겨난다. 제대로 진단이 되어야만 올바른 처방전이 나오는 법이다. ● 바둑은 출세가도를 걷는 종목 윤봉길의사의 의거장소인 상하이 홍구공원. 공원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마당에 테이블이 100여개쯤 놓여있다. 마작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줄 알았던 테이블에서 시민들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체육관에서 펼쳐지는 아마바둑대회에 익숙한 필자는 “날씨가 흐리지만 않으면 매일 볼 수 있는 광경”이라는 현지인의 설명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더 장관인 것은 100여개 테이블마다 대국자를 에워싼 몇 배수의 구름관중이었다. 중국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가 있고 다음은 바둑이다. 중국의 일인자 구리는 여성 팬도 많다. 호남에다 성격도 좋고 돈도 잘 버니 당연히 1등 신랑감이다. 5년 전 구리의 고향인 충칭을 방문했을 때 구리는 거의 신으로 대접받고 있었고 충칭기원은 구리의 개인 박물관 같았다. 또한 구리가 숙소인 호텔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호텔종업원의 득달같은 사인공세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순간까지 이어졌다. 5년 전이면 지금처럼 큰 기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 중국기원은 곧 국가공무원 중국바둑의 본산은 물론 중국기원이다. 한국, 일본기원과는 달리 중국기원은 바둑 이외에 체스 장기 브릿지 등 여러 보드게임들을 스포츠범주에 넣어놓아 각 부문은 협회차원에서 일처리가 이루어진다. 물론 그 중 바둑이 최고 인기 스포츠. 중국에서 바둑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단적인 예로는 중국기원 왕루난 원장(프로 8단)의 경우 최상위 공무원에 속한 관료. 중국의 프로기사 수는 600명 정도이며 지방기사나 무명의 저단 기사의 경우는 프로활동을 하는 지 여부를 알 수 없는 수도 상당수. 분명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 바둑수요가 크게 늘어나 프로를 한 해 20명가량을 뽑으면서 왕성한 활동을 경쟁적으로 한다. 대부분은 상금으로 생활하는 것보다 지방기원에서 일하거나 본 직업을 따로 두는 경우가 많다. 다만 다른 직업이란 것이 거의 다 바둑에 관계하는 일이라서 굳이 부업이랄 것도 없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바둑이 돈 되는 직업이다. 충칭에서 만난 지방여류기사는 입단한 지 몇 달이 안 된 기사였는데 곧 탈퇴할 것이라고 했다. 지방에까지 지망생이 몰려드는 까닭에 중국기원이 있는 베이징으로 시합을 참가하거나, 기타 행사가 있으면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에 가르치는 지망생들에게 실례가 된다는 이유라고. 배우겠다는 학생에 비해 선생님이 모자라란다는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다 있을까’ 프로 활동할 시간이 없어서 아마로 돌아오겠다고? 믿을 수 없는 얘기이다. ● 바둑장려책의 핵심은 스포츠로 분류 중국기원 1층에 한 동상이 있다. 한때 중국의 오성장군이었다는 그는 ‘진의’라는 사람이다. 현대 중국바둑 사업의 창시자인 진의(陳毅) 장군은 어릴적 부터 바둑에 많은 정열을 쏟아 부었다. 중국의 부총리이며 외교부 부장인 진의 장군은 중국의 바둑사업 보급 및 외교방면에서 아주 큰 역할을 했다. 1960년 중일간의 바둑교류는 진의 장군이 실현했다고 한다. 중국바둑의 개척자 천주더와 비슷한 나이의 이 사람이 바로 바둑을 스포츠 분야로 넣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1층에 상징물로 세워두었다는 것은 ‘바둑=스포츠’가 된 것을 중국 바둑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이유가 아닐까? 사회주의 국가로서 정책적으로 잘하는 종목을 육성하는 프로그램도 활성화 되어있다. TV를 켜면 어김없이 스포츠뉴스에 바둑소식이 나오고 있고 바둑프로그램이 수도 없이 공중파 방송을 타고 있다. 그것은 세계대회나 어린이 바둑대회 소식이라도 마찬가지이다. 바둑이 국가적 지원을 받는 것은 축구 탁구와 마찬가지 오로지 스포츠의 한 방편이기 때문이고, 붐 조성을 위해서도 의도적으로 키운다. 또한 젊은 기사들이 군문제로 고민하는 일은 없다. 중국은 해방군의 규모를 기존의 500만에서 절반으로 줄였다. 그렇다면 13억 인구에서 250만의 비율은 500분의 1정도. 따라서 중국기사의 군 입대 부담은 거의 없다. 정히 군에 가고 싶다면 넉넉한 월급을 듬뿍 받고 가야 할 정도로 여건이 좋다.
중국기원은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게 되면 상금 외에 10만 위안(1200만원 정도)의 격려금이 주어진다. 한국의 경우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메리트 시스템이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사기진작용이다. 중국은 상금으로 1억 받으면 20퍼센트는 기전개최국에서 떼고(모든 나라에서 그렇게 한다) 28퍼센트만 본인차지이다. 나머지는 중국기원에 귀속된다. 말하자면 세금을 많이 때어내어 그 소득으로 중국기원의 주도적인 사업을 추진한다. 따라서 우승기사의 ‘손해 본’ 소득의 일부라도 보전해주겠다는 취지에서 생겨난 당근작전이다. 창하오(잉씨배) 뤄시허(삼성화재배) 구리(LG배)가 격려금을 받았다. 최근 벌어진 춘란배에서도 중국 우승의 최대 걸림돌인 이창호 이세돌을 격파한 구리와 씨에허가 일정한 비율에 따라 상금의 일부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8강전에서 ‘양이(李)’를 격파하지 못했더라면 우승도 없다는 판단. 이에 대해 춘란배 결승진출자 창하오는 “격려금의 혜택을 보았다는 것이 중요할 뿐, 누가 획득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을 보여주었다. ● 춘란그룹도 “우리는 하나” 동참 이러한 격려금은 중국기원에서 주는 것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국가가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 우승자 이외의 기사에게도 섭섭하지 않게 배려하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현실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얘기가 나온 김에 춘란배에 관한 얘기를 소개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춘란배가 중국기사가 우승을 못하니 주최 측에서 화가 나서 대회규모를 줄였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다수이다. 그러나 춘란배 기전예산도 국책사업의 간접자본으로 들어갔다. 중국인들이 쓰는 ‘공정’이란 말은 프로젝트라는 뜻. 중국은 서북쪽 사람이 동북쪽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희망공정”이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바로 그 일환으로 춘란그룹은 바둑계에 자금을 쾌척했다. 즉, 대회는 2년마다 한 번씩 치르되 치러지지 않는 해는 대회개최 비용을 중국기원에 맡겨 바둑계의 희망공정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자금으로 쓰인다. 이도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색채이다. ● 국가대표팀은 메이저리그-연구생 정년 15세 중국기원에서는 어린 유망주를 숙식하며 키운다. 중국기원의 프로기사의 관리는 이원화 되어있다. 마샤오춘이 감독으로 있는 국가팀이 1군. 얼마 전까지 우웨이린(6단)이 맡았던 국가소년대가 2군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각 지방기원에서는 루키군의 성장에 이바지함으로 마치 메이저리그처럼 체계적이다. 국가팀은 대부분의 유명기사가 소속되어있는 국가대표팀이며 성적우수자를 뽑아 상비군 체제로 가져간다. 따라서 세계대회가 임박하면 마샤오춘 감독의 지시아래 비상체제로 돌입하여 연구에 열중한다. 일류가 된 그들은 공동연구가 일상화되어 있다. 반면 나이가 어리고 저단 중에서 장래가 기대되는 유망주는 소년대에서 키운다. 창하오 구리 천야오예 등은 어렸을 때부터 국가소년대에 뽑혀 중국 정부의 관리아래 집중적으로 바둑공부를 해왔던 케이스. 세대교체도 원활하다. 중국바둑은 9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마샤오춘으로 대표되던 세대였다. 그러나 위빈 창하오 저우허양 등 ‘6소룡’이 세대교체를 이룬다. 2000년대에 접어들자 구리, 후야호위, 쿵제로 대표되는 ‘10소호’세대와 천야오예를 중심으로 하는 ‘소표’에게 정상의 일부를 넘겨주었다. 현재의 중국바둑은 소룡(小龍) 소호(小虎) 소표(小豹) 시대의 혼재시기. 이 모두 국가대표팀의 철저한 관리시스템의 부산물이다. 최근 어린 기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입단 연령을 15세 이하로 한정해 놓았기 때문.
● 강한 메리트-중국리그 국가팀이 자나 깨나 강훈련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둑에 매진하면 충분한 메리트가 있다는 것이다. 설령 프로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기량만 있으면 충분히 삶을 영위할 만한 시장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빵’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왕루난 원장은 “중국기사들의 실력상승은 중국리그와 인터넷의 발전이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부친도 없는 어려운 가정형편의 조선족 기사 박문요는 조훈현의 도움으로 어려운 기간을 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박문요는 후원금이 없어도 넉넉한 생활을 한다. 2년 전 중국리그에 포함되면서 생활이 풍족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리그에도 한번 진출했다고 해서 계속 출전이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생활비 걱정을 하면서 고생한 그에게는 다시는 내려오기 싫기에 사력을 다해서 공부한다. 즉, 노력만 하면 충분한 빵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리그는 빵 뿐 만아니라 우물 안 개구리였던 중국기사의 근력을 키워주는 기회도 동시에 제공했다. 한국의 이창호 이세돌 조훈현 장쉬 등 유명기사를 1판당 1000만원을 상회하는 거금을 들여가면서 최강국 한국의 기사와 중국의 풋내기 기사가 맞붙을 기회를 제공했다. 최강국기사에게 한번 뺨을 맞는 대가치고는 중국사정을 생각하면 엄청난 돈을 지불한 것. 덕분에 그 풋내기 기사는 중국리그에서 자주 대하는 이창호와 이세돌이 세계대회에서 만나도 그리 낯설지 않았고, 더구나 겁을 집어 먹지는 않았던 것이다. ● 중요한 것은 바둑으로 돈이 된다는 것 중국이 상대적으로 바둑에 목을 매는 이유 중 하나는 한중일의 돈 가치에 관한 관점도 살펴보아야 한다. 어림치이긴 하지만, 한국 돈 1억이면 중국은 3~4억, 일본은 3~4000만원의 느낌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과 한국은 각각 3~4배의 차이가 나며, 일본과 중국은 10배나 차이가 난다는 계산이다. 바로 이것이 한중일 삼각구도에서 중국이 가장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드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일본의 경우는 80년대 일인자 조치훈과 야구스타의 1년 수입은 비슷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와서는 여자프로레슬러보다도 수입이 적다. 일본에서 작년 농심신라면배에서 우승하고 받은 상금은 1억5000만원. 5명이 나눠가지면 1인당 3000만원.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그리 큰돈은 아닐 수 있다. 더욱이 앞서 설명한 떼는 돈을 감안하면 말이다. 이상 중국바둑에 대해 필자가 아는 만큼만 피상적으로 나열했음에도 중국은 너무 좋은 환경임을 알 수 있다. 투자를 했으면 성과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 이에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추격이 가시권에 들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향후 대회에서는 보다 집중력을 발휘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중기적으로는 이에 상응하는 제도의 보완이 시급한 상황이다. 단 한줌의 프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 바둑인을 위해서도 그러하다. 훌륭한 상대가 있어야 나도 발전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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