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잊고 있었다. 이창호 후학세대의 전면등장은 우리의 눈과 귀를 쏠리게 했고, 또 중국의 눈부신 약진에서 일본을 잊고 있었다. 일본을 잊은 것은 이해가 된다지만 조치훈이란 이름까지 잊어버릴 수는 없는 것. 끝없는 도전정신과 불타는 투혼을 가르쳐 주었던 그 조치훈을 어찌 잊을쏜가. 그가 다시 온다. 8일부터 야마시타게이고의 도전을 받아 랭킹 4위 십단전 방어전을 갖는다. 마지막 남은 '라디오스타' 조치훈은 어느덧 52세. 조훈현, 서봉수, 섭위평, 고바야시고이치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가고, 마지막 남은 50대 조치훈은 1년을 더 버틸 시험을 치른다. 아직도 그가 우리의 곁에서 화려한 현역기사로 머물러있다는 자체가 눈물겨운 일이다. ˚ 먼지 자욱한 15년 전 필름을 다시 돌리다
대삼관(大三冠)도 4차례나 차지했고, 전통의 본인방을 10연패하기도 했고, 통산 타이틀획득 69개로 일본바둑사를 모조리 고쳐 쓴 조치훈.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조치훈이 가장 그다웠을 때는 바로 1990 ~ 1992년 본인방전 도전기였다. 필사적으로 방어하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1990년 1승 후 3연패를 한 다음 막판 3연승. 1991년 2패 후 내리 4연승. 1992년 3패 후 4연승. 어떤 작가도 그러한 대하드라마를 만들진 못할 것이다. 바둑역사상 가장 센세이션한 대역전 드라마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조치훈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렇듯 조치훈은 바둑이전의 그 무엇이 있는 승부사다. ˚ 2007 또 다시 벼랑에 몰린 조치훈
그때나 지금이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은 우연히도 똑같다. 그러나 다른 것이 몇 가지 있다. 당시에는 사지 중에 성한 것이 하나만 있어도 해볼 만한 출중한 파워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꾸로 상대가 그 만큼 막강하고 자신은 야위어 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일본바둑을 마치 2부 리그 취급하고 있다는 점도 그때와 다른 점이다. 당시에 잡지의 톱에 나올 만큼 이슈거리였지만 요즘은 일본소식은 변방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치훈을 보고 싶다.조치훈이 바둑을 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과연 그가 아직도 팬들에게 보여줄 투혼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맘 간절하다. 조치훈은 작년 일본 기성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야마시타에게 노련미를 한껏 과시하며 1차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집요한 도전자 야마시타가 또 십단을 향해 돌진해 왔다. 또 다시 막강한 그를 5번기에서 이겨낸다는 것은 몹시 고단한 일이다. 만약 야마시타가 십단을 따내면 7대 기전 중 3개를 차지하는 다관왕이 된다. 십단 하나 달랑 남은 조치훈으로서는 오래된 단도(短刀) 하나뿐이다. 기성 명인을 보유했던 고바야시가 본인방만 따내면 대삼관을 이룩하게 되었을 때와 어찌 흡사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일본바둑계 모든 시선은 야마시타에게 쏠려 있으리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 ˚ 강력한 일본 1인자 야마시타게이고
2003년 왕리청으로부터 최연소로 최고기전 기성의 반열에 오르지만 이듬해 하네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그러다 3년 만에 하네를 4:0으로 완파하며 재등극한 후, 첫 방어전을 마친 상태이다. 따라서 일본의 혼란한 전국시대를 일단 마감시킬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게하는 청년이다. 사실 일본의 전국시대는 조치훈 이후 왕리청으로 귀결되는 듯 하다가 최근 10여 년 간 인물만 바뀔 뿐이지 전국시대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작은 체격에 수줍음을 많이 타는 편이지만 기풍이 전투적이고 파이팅은 대단히 넘친다. "결코 닮고 싶거나 흉내 내고 싶은 기풍은 없다. 또한 이기지 못하는 바둑을 둘 이유는 없다."며 기염을 토한다. 다만 세계대회에서는 큰 성적이 없다는 것이 걸린다. 중환배 4강에 든 것이 가장 높이 올라간 위치.
˚ 최근 십단전 반추하기 조치훈은 2002년 왕밍완에게 왕좌 타이틀을 내준 뒤 7대 타이틀과 인연은 영영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2005년 자신을 누르고 한 때 일인자로 군림했던 왕리청에게 십단을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일본 바둑계에서는 그가 '빅3'기전으로 가는 희망을 쐈노라고 평가했지만 아직까지는 그 희망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있다. 2006년 조치훈은 십단전 1차방어전을 바로 야마시타와 가졌다. 상대전적 3승 8패에서 가진 일인자와의 매치에서 예상을 뒤엎고 1:3으로 선방했다. 1999년 ~ 2003년까지 야마시타에게 8연패를 당한 바 있는 조치훈이 그의 천적이라는 최강 도전자를 물리친 것이 의외였다. 다시 찾아온 도전자 야마시타. 지난해보다 좀 더 강해졌고 반면 조치훈의 근력은 좀 더 쇠잔해져있다. 그러나 어차피 산전수전 다 겪은 조치훈도 만발의 수비를 계획하고 있는지 모른다. 20년 전에는 기력으로 싸웠지만 20년 후인 지금은 투혼으로 싸우는 그를 결코 만만하게 볼 위인은 아닌 것이다. 더욱이 자신에게 불리한 징후가 많으면 많을수록 힘을 쓰고 벼랑으로 몰리면 몰릴수록 힘을 쓰는 드라마틱한 용사가 조치훈 아닌가. '노병은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기사들이 득실대는 오늘도 일본은 세대교체 중이다. 한국과 중국에 비해 오래 걸리는 이유는 오로지 조치훈 때문이다. 그보다 후배인 유창혁, 마샤오춘, 요다노리모토 등 40대 초반 기사도 힘이 떨어지는 가운데 지천명 조치훈만이 유독 빛이 난다.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조치훈. 그 이름 석 자를 떠올리면 가슴에 뭔가가 불쑥 솟아 오는 이 기분은 비단 필자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빠른 것, 새 것이 각광받는 요즘 논리에 느린것, 오래된 것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조치훈의 방어를 학수고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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