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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장배]

정관장배 결산/기적이 일어나다

이민진 막판 5연승으로 역전우승-여자바둑계 신데렐라로 떠올라

진재호 바둑평론가2007-03-18 15: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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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가 어떤 곳인가. 한국이 자랑하는 투톱 이창호 이세돌이 동반 탈락하여 4강 네 자리를 모조리 중국에게 내준 작년 춘란배. 한국 팬으로서는 ‘광저우의 굴욕'을 벌써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필 광저우인가. 3차전 정관장배를 앞두고 한국은 ‘광저우의 굴육Ⅱ'를 각오해야만 했다.

한국 중국 일본의 남은 기사 숫자로 보면 1:2:2. 또한 한국과 중국부터 대국을 해야 함으로 일본이 가장 유리한 상황이다. 이민진은 한국에서 거둔 1승을 포함하여 5연승을 거두어야 첫 단체전우승을 선물할 수 있었다. 어쩐 일인가. 상상하던 대로 명화는 그려지고야 말았다. 이민진은 3차전 4대국을 모조리 이겨내며 05년 이창호가 농심배에서 보여줬던 투혼을 그대로 재현했다.


▲ 대국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이민진(가운데)를 마중나간 김선미와 김혜민.

기적이 일어나다
3차전에 앞서, 중국과 일본이 각각 2명의 기사를 남겼고 한국은 이민진이 홀로 남았다. 이번 대회 들어서 초강세를 띄는 일본. 고니시카즈코는 관서기원 소속으로 06년 관서여류토너먼트 우승한 바 있고, 야시로쿠미코은 2년 연속 여류본인방을 보유한 바 있는 매서운 바둑이다.

중국의 리춘화․ 예꾸이. 벌써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실력파 초강력 기사이다. 예꾸이는 재작년 정관장배 5연승을 한 바 있고 03년 전국개인전, 05년 여류명인전을 우승한 실력 일인자. 게다가 리춘화는 전국개인전에서 두 차례나 우승한 백전노장이다.

그들의 이력 앞에 한국주장 이민진은 변변한 타이틀 하나 없었다. 오히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설사 중도에서 패한다고 하더라도 하등 미안해 할 것 없는 깃털처럼 가벼운 기분으로 부담감 제로에서 출발했다. 한국바둑으로서는 위기였으나 이민진 개인으로서는 기회였다.

1차전=전력탐색
작년 말 시작된 1국. 첫 주자로 이하진을 내세운 한국은 중국 건교배 준우승에 빛나는 루지아에게 아까운 반집패를 당하여 출발이 좋지 않았다. 2국에서 일본은 빅카드를 꺼내 든다. 일본의 주장급인 여류명인 아오키기쿠요를 내보낸 것이다. 일본에서 8단은 4명밖에는 없는 여자최고 단위. 그러나 루지아는 큰 차이로 이겨 2연승을 기록한다.

3국에서는 대리배 결 승에 올라있고 신흥강호로 급부상하고 있는 김혜민이 나서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연승까지는 연결 되지는 못했다. 4국에서 김혜민은 일본여류기성 만나미카나에게 석패.

날짜
승자
패자
결과
2006-12-11
○ 루지아
● 이하진
255수 끝, 백 반집승
2006-12-12
○ 루지아
● 아오키기쿠요
284수 끝, 백 14집반승
2006-12-13
● 김혜민
○ 루지아
303수 끝, 흑 5집반승
2006-12-14
○ 만나미카나
● 김혜민
184수 끝, 백 불계승


2차전=일본의 두각
해를 바꿔 1월. 한국에서 벌어진 2차전 뚜껑을 열자마자 일본의 약진이 이어진다. 1차전에서 김혜민을 꺾었던 만나미가 그 태풍의 눈으로 자리 잡는다. 5국에서 작년 5연승 돌풍을 일으켰던 왕샹윈, 6국에서 한국의 현미진을 내리 꺾어 3연승. 만나니의 연승행진이 멈춰선 것은 7국 째였다. 04년 건교배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중국에서 손꼽히는 유망주로 알려진 정옌에게 패한다.

8국에서는 한국이 승부를 걸었다. 박지은이 나왔다. 이렇게 밀리다가는 중국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버틸 수가 없다고 본 탓일까? 이민진과 박지은이 남았다면 당연히 박지은을 뒤로 돌려야 하지만, 둘은 천연덕스럽게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다음 등판을 결정지었다. 먼저 중국 일본의 모진 매를 맞기 싫어했음일까. 아니면, 서로 기적 같은 연승행진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을까.


▲ 2차전 마지막 대국에서 일본 가토게이코를 꺾은 이민진(오른쪽).

결국 이민진이 운명처럼 주장이 되고 만다. 그러나 정옌은 급히 소방수로 변신한 주장 박지은과의 대결에서도 2집반을 남기며 2연승을 달린다. 한국으로서는 거의 절망이었다. 미리 당겨 쓴 주장카드를 잃어버렸으니 ‘대타 주장' 이민진에게 싹쓸이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한 일이었다.

일본의 대회 첫 우승의 꿈이 실현될 것인가. 9국에서 가토게이코가 나서 정옌을 꺾었다. 그러나 이내 홀로 남은 이민진은 10국에서 가토를 뉘고 ‘겨우' 한숨을 돌린다. 3차전 광저우까지 한국이 갔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정관장배 3년 연속으로 출전한 이민진은 3년 동안 1승씩을 거두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다.

날짜
승자
패자
결과
2007-01-13
○ 만나미카나
● 왕샹윈
232수 끝, 백 불계승
2007-01-14
○ 만나미카나
● 현미진
278수 끝, 백 3집반승
2007-01-15
○ 정옌
● 만나미카나
253수 끝, 백 10집반승
2007-01-16
● 정옌
○ 박지은
253수 끝, 흑 2집반승
2007-01-17

○ 가토게이꼬

 ● 정옌

200수 끝, 백 불계승

2007-01-18

 ● 이민진

○ 가토게이꼬

 275수 끝, 흑 불계승



3차전=기적을 일구다
한국으로서는 실질적인 승부는 여기까지였다. 2승 정도는 무난하게 거두어줄 것으로 예상되었던 박지은이 조기 강판하면서 솔직히 포기했었다. 4승을 더 보태야 된다는 생각은 이론이지 실제는 아니었다. 더구나 선수로는 혼자서 달랑 날아간 ‘죽음의 땅' 광저우에서 기사회생이라는 것은 차라리 기적이니까.

힘을 낸다. 점점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민진은 신이 났다. 11국에서 이민진은 강타자 리춘화 누르고 2연승을 거둔다. 힘겨운 승부였다. 공격이 실패하면서 형세가 급격히 기울었지만, 천우신조랄까. 상대의 막판 실수에 힘입어 325수까지 가는 접전 끝에 1집반을 남긴다. 구사일생. 운이 따른 한판이었다.

2국에서 이민진은 고니시카즈코를 또 꺾는다. 혹시 팬들의 관점에서는 일본기사는 쉽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민진은 오히려 일본기사에게는 3할 정도의 승률을 그간 보여 왔다. 이 대국에서도 운은 따랐다. 대마 사활이 걸린 상황. 거의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쉬운 사활을 상대가 착각해주는 바람에 이판도 쓸어 담는다.

장타에는 분명 운이 가운데 하나씩 끼어있는 법이고 운도 실력이다. 그 운은 계속 이민진의 편이었다. 이제 한중일이 주장들만 남는다. 그래도 이민진은 두 판을 연속으로 더 이겨야 한다. 지금쯤 막판 5연승에 대한 욕심도 슬슬 생기고 있다. 하루하루 짜릿한 승부를 벌이는 동안 체력은 바닥이지만, 그 걱정을 할 겨를이 없다.

이민진의 다음 상대는 이 대회에 출전한 기사 중 실력최강 예꾸이. 5연승가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한 기사. 그러나 에꾸이도 300수가 넘는 접전 끝에 무릎을 꿇고 만다.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었던 지난 3판과는 달리 실력으로 완전 제압한 한판이었다.

이제는 못 이길 상대가 없다. 막판은 일본의 야시로쿠미로. 그러나 오를 대로 오른 이민진의 기세를 꺾을 수 없다. 역시 주장답게 300수가 넘어 가는 접전이었으나 집 차이는 제법 벌어졌다. 막판 기적의 5연승-. 상상이 현실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날짜
승자
패자
결과
2007-03-12
● 이민진
○ 리춘화
325수 끝, 흑 1집반승
2007-03-13
● 이민진
○ 고니시카즈코
153수 끝, 흑 불계승
2007-03-14
○ 이민진
● 예꾸이
321수 끝, 백 9집반승
2007-03-15
○ 이민진
● 야시로쿠미코
298수 끝, 백 6집반승

 

이민진은 누구인가
입단 9년 만에 혁혁한 성과를 거둔 이민진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바둑교실 간판을 보고 바둑을 가르쳐 달라고 어머니를 떼를 쓴 이후 4년을 배웠다. 그리고 3대 도장인 김원도장에서 수학했다.

이민진은 99년에 입단하여 올해 24세가 되는 건강 미인이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당차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좋아하고 주변의 자신에게 쏠리는 것은 즐길 줄 아는 선이 굵은 아가씨이다.

프로기사 중에 학생시절부터 아마강자가 되기까지 한 차례도 우승을 못 해본 사람을 찾기는 정말이지 힘이 들 것이다. 그녀는 그 힘든 사람 중 한 명이다. 가장 높이 올라간 것이 입단하기 2년 전인 97년 롯데배 여류최고위전 준우승. 그것도 프로에 와서는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너무 멀리 가 있는 조혜연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문 것.

그러나 입단대회에서만큼은 유독 강했다. 김세영 도은교 등이 강자로 소문 나 있을 때 ‘고작' 4차례 도전 만에 입단에 성공했다. 3번째 도전한 입단대회에서 전승을 달리다 김세영에게 패했다. 대만출신 장정핑과 동률을 기록, 재 대국 끝에 애석하게 탈락한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실수는 없었다. 다음번 대회에서는 그 김세영을 당당히 누르고 입단을 결정짓는다.


▲ 이민진 5단에게 큰 힘이 되어준 부모님과 언니 이민혜 씨.

여자바둑계의 새로운 아이콘
그간 이민진은 ‘경계인'이었다. 여자기사는 자신의 ‘활로'를 일찌감치 정하는 것이 관례이다. 루이 박지은 조혜연은 남자 못지않은 바둑실력으로서 이미지를 굳혔고, 김효정 한혜원은 방송진행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윤영선 강승희는 해외보급 활동에 눈을 돌렸고, 이정원 현미진 하호정은 결혼과 동시에 안정된 상황에서 여러 활동을 한다.

이민진은 여자기사 중 5번째 안에 드는 강자이지만 그간 탁월한 성적은 없었다. 벌써 입단 9년째가 되고 승률은 5할을 가두고는 있지만, 프로기사 이민진의 위치는 항상 애매한 자리였다. “루이 박지은 조혜연과 함께 자신의 이름이 거명되기를 학수고대 한다”는 소감에서 그간 경계인으로서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자고나니 유명해졌다.'는 말도 있지만, 준비 안 된 스타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주변의 시선이 쏠리면 쏠릴수록 보란 듯이 해보이고야 마는 그녀의 성격으로 볼 때, 이제 여자바둑계는 또 하나의 걸출한 스타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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