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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타]

'붉은얼굴 작은 기왕' 저우쥔쉰

대만인 최초 세계정상에 오른 그는 누구인가

김애실 특파원2007-03-22 11: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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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모르는 사람에게 있어서 저우쥔쉰이라는 이름이 낯설지도 모른다. 대만 초등학교 교과서 '붉은 얼굴의 어린기왕'이라는 제목으로 서술된 주인공이 바로 저우쥔쉰이다. 얼굴 절반부위가 붉은 태기가 있어 어릴적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눈길을 받아왔으나 바둑으로 다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창조해낸 자가 바로 저우쥔쉰이다.

저우쥔쉰은 대만 역사이래 유일한 본토 바둑 9단이며 또 처음으로 세계정상에 오른 대만기사이다. 바둑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6살부터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1989년 초등학교 3학년때 아세아항공배 바둑대국에서 첫 우승을 따내 대만 바둑계 언론에 올랐다.

▲ 저우쥔쉰 9단.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연속 대만바둑계의 여러기록을 돌파했으며 20살때 대만 바둑랭킹 상위권에 들어섰다. 한때 대만을 대표하여 45개 나라에서 참가하는 세계 대국에 참가했으며 성년 기사들과 대결을 벌여 초등학생이었던 저우쥔쉰이 좋은 성적을 따냈었다 .

14살에 프로기사가 되어 당시 세계 제일 어린 프로기사로 되었다. 프로기사로 된 후 저조기에 처해 한해 50 여번 되는 대국에서 오직 6번밖에 이기지 못했다. 그때 부모님들의 근심과 걱정이 컸으나 이미 자신의 모든것을 바둑에 바친 그에게는 오직 자신에 대한 믿음뿐이었다 .

그 결과 이듬해(15 살) 명인전과 국수전 타이틀을 접수했으며 중학교 3학년 되는해 이미 바둑계에 '붉은 얼굴의 작은기왕' 이라는 이름을 널리 날렸다 .
성공한 자의 뒤에는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어릴때부터 생긴 태기로 하여 학교에 간 첫날 학급 친구들은 “귀신이 왔다.” 라고 놀려댔으며 '귀신', '흑백낭군' 등 별명이 항상 그를 괴롭혔다. 어린 저우쥔쉰은 음사람이 많은 곳을 가기 두려워했고 학교에 가는것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에게 잠겨진 묵직한 '마의 열쇠' 가 바둑을 알고나서 부터 열리기 시작했으며 또한 그에게 인생의 방향을 잡을수 있는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주위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항상 바둑에 전념하게 되었고 바둑판에서 그는 주위 사람들의 놀림과 멸시를 잊을수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일찍이 전념과 냉정함 침착함을 배우게 되었다.

어릴적부터 사처로 다니며 대국에 참가해야 했었던 원인으로 인해 학교에서 많은 청가를 맡은 그는 중학교 졸업할때 학교에서는 그에게 졸업증서 발급을 거절하기까지 했다. 바둑계의 '명인' 으로 널리 알려진 후에야 학교에서는 비로소 졸업장을 내주었다고 한다.

저우쥔쉰의 남동생 저우핑창 역시 프로 4단이다. 그는 저우쥔쉰이 많은 시간을 바둑에 전념하다 보니 학업에 열중할 여가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상황에도 학업을 포기 하지 않았으며 학교 졸업증까지 취득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저우쥔쉰은 이미 세계대회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으며 한국에서 주최한 세계 대회 에서 조한승에게 이겼고 제2국은 당시 본인이 스타로 존경해오던 왕리청에게 이겨 세계 8강에 진출했으며 이로 인해 세계 사람들이 저우쥔쉰을 알게 되었다.

▲ LG배 결승 1국에서 후야오위 8단을 물리치고 1승을 거둔 저우쥔쉰 9단. 복기를 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바둑배우는 길에서도 많은 굴곡이 있었다. 저우쥔쉰은 대만에서 처음으로 홀몸으로 중국대륙에 와서 바둑을 공부한 대만기사이다. 20세 당시 홀몸으로 사천성 성도시에 와서 중국 기사 쑹쉐린 (宋雪林) 9단의 학교에서 바둑을 배웠으며 후에 중국의 입단대국에 참여하여 프로 3단으로 되었다.

2000년 저우쥔쉰은 대만 랭킹 1위에 올랐으며 이듬해 대만을 대표하여 일본 후지쯔배 세계대회에서 당시 제2의 이창호라 불렸던 목진석과 한국의 불패의 소년이라 불렸던 이세돌 그리고 일본의 고노린에게 이기며 4강에 진출했다.

저우쥔쉰의 놀라운 성적은 중국 국내 바둑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홍콩에서도 높은 상을 걸고 그를 요청하여 중국 국내 바둑갑조리그에 출전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저우쥔쉰은 처음으로 갑조리그에 출전해 6승1패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당시 패했던 상대는 한국기왕으로 불리웠던 서봉수과 중국 최강기사 마샤오춘이었다.

저우쥔쉰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이미 초등학생들의 교과서 과문에 기록되여 널리 알려지고 있으며 가끔씩 초등학생들이 과문속의 주인공과 직접 만날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 후배들에게 조언과 앞날에 대한 희망을 부여해주기도 한다.

어릴적 주위 사람들의 경멸과 무시에 힘들었을 당시 그는 달리기로 그 괴로움을 해소하곤 했으며 9살때 400M 되는 운동장을 70바퀴까지 달렸다고 한다. 당시의 운동이 현재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화가 있으면 그 뒤에 복이 따르기 마련이다. 생명은 자기 힘으로 길을 찾아가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

3월 20일 http://tw.news.yahoo.com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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