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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시평]

바둑의 기원에 관한 고찰②

8圖 般上의 占卜에서 시작된 바둑의 연원

이청 바둑사학자2007-04-06 11: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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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상의 문화사적 검토
동양에서 문자로 구성된 가장 오래된 책은 주역이다. 주역은 서경이전의 시대에 만들어져 동양사상의 수원지가 된 책이다. 주역은 은허점사에도 수많은 흔적을 (주20) 남긴다.주역은 말할것 없이 고대인들이 점을 치던 책이다. 이 주역을 보면 놀랍게도 바둑의 속성이 적나라하게 녹아 있다.

원시 주역의 형식은 아주 초보적인 한 권의 목간(木刊)이다. 처음의 점은 괘를 셈하는 것이었다.괘는 사정괘(四定卦) 감,리 ,진, 태와 후사괘 간곤손감이였다. 샤먼은 바로 이 팔괘를 셈하고 계산 하는 (巫, 史)것이 직분이었다. 주역 57의 손괘는 주역의 시초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한다.

ㅡ 牀下用史巫粉若吉無咎.

상 아래 엎드린 샤먼(사무)이 피를 받아 제사를 올리니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해석한 '예기'는 잡기편에 종묘의 새끼 돼지를 잡아 피를 바른다고 되어 있다. 4천년전 황하의 한 평지에서 출발한 이 갑골의 뜻이 훗날 나당군의 백제 정벌시 웅진 취리산에서 맹약(663)을 할 때 얼굴에 돼지 피를 발랐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남긴다.

주역은 사실 누가 뭐라 해도 복잡한 책이다. 복잡한 이유는 4천년이란 시간을 지나 오며 온갓 사람이 달라 들어 이런 저런 해석을 첨가한 탓이다. 그러다보니 연구자가 쓴 책을 본인이 읽으며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희한한(?)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역에서 이런 덧칠을 걷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초의 사정괘에 후사괘 간,손,곤, 건 8괘로 바로 가면 곧바로 4천년전의 황하의 현장으로 가 그 시대 사람들을 만 날 수 있다. 그것은 갑골문의 발견과 해석이 있기에 가능해 졌다.

갑골문은 현재까지 은대와 주대의 글자 2500여자가 발굴 되어 2000자가 완전 해독 되었고 350여자가 부분 해독 되었다. 이 2500여자의 갑골문으로 그 시대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경외적인 일이다. 이 2500여자의 갑골문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필자는 이 갑골문으로 주역을 읽으며 바둑을 유추 해 보았다. 주역이 책의 화석(化石)이고 갑골문으로 쓰여진 역사를 갖고 있기에 혹시 이 속에서 바둑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까 하는 이유에서다.

주역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갑골문은 사무(四巫)다. 사무는 샤먼이란 당시 집단의 지도자였고 동시에 그 집단의 가장 현명한 엘리트다.

ㅡ 上古結繩而治聖人之而書契.

주역은 상고 시절에는 노끈을 매어 문자로 삼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승이란 문자는 갑골문에서 찾아 지지 않는다. 주역의 첨삭이다. 그러나 갑골문속에는 결승문자의 흔적이 분명 남아있다.

午는 실을 한 매듭으로 묶은 형상이다. 玆또한 매듭을 두개로 묶은 의미다. 결승이란 문자도 찾아 지지 않는 고대의 2천여자중에는 세상의 모든 반상게임의 총칭인 '박혁' '박희'' 장기도 나타 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의 대명사인 漢도 나타나지 않는 이 고대의 문자속에 오직 바둑을 꾸미는 위기 흑백만이 한자의 이탈자도 없이 남아 있는 것은 우연인가.

이곳에서 한국의 놀이라는 명저를 낸 슈튜어드 컬린을 거론 하지 않을 수 없다. 컬린은 1895년에 낸 책에서 중국의 바둑판의 4화점위에 사정괘(四定罫) 간,손,곤,간을 보고 바둑을 동양 사상인 네 방위의 게임이라 규정 했다. 주역의 정사괘는 춘하추동을 말한다. 간손곤간은 말할것 없이 동서남북의 방위다.

시간성과 공간성이 완성된 반상위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일이 벌어 지고 있었던 고대의 비밀을 19세기에 중국을 거쳐 조선에 왔던 이방인이 포착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주역에 남아 있는 갑골문의 가장 오래된 글자는 史巫亨이다. 모두 제사와 관계된 글자들이다. 역(易)은 술잔을 주고 받는 형상이다. 샤먼이 제사를 지낸 후 술잔을 나누어 마시던 모습인 것이다.

위기는 바로 이 사무가 제사를 지내며 사용 하던 제기다. 귀갑이나 토기로 구어진 방괘(方罫) 사선위에 木,石(작은 모양 산대의 원형)을 던져 점을 치던 것이다. 역은 갑골문의 연구자들이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라 했다. 그러나 설문해자에서는 도마뱀을 표현 한다는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역은 日과 勿의 조합이다.해가 방괘(方罫)위에 올려진 모습이기도 하다. 대만의 한 학자는 말물이 위(圍)의 유사어라고도 한다.

네모진 사선이 그려진 판위에 무엇인가를 던지는 모습이 占이다. 이 사선이 그려진 방괘(方罫)위에서 위기, 박혁, 색, 격오, 장기등 수백종의 반상게임이 출발 한다. 이 놀이 문화가 종교와는 맞지 않는 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불교에서 장기가 나왔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지만 인도의 불경인 '대모적경'과 '소문대승경'속에 장기를 불도의 한 방편으로 인식한 기록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부처의 가장 원음을 표현한 장아함경에는 승려들은 장기 박희등을 금지 해야 한다(禁止僧衆棋局博戱)라는 기록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기록은 후대의 첨삭이다.

원시 주역은 모든 종교 보다 앞선다. 슈튜어드 컬린은 문화 인류학자의 직감으로 바둑의 속성을 간파 했다. 이 의견을 존중 하며 사방위괘의 곤(坤)괘를 보자. 곤은 남동이고 바둑판위에서는 우하귀다. 곤은 元亨利牝馬之貞.이다. 알록 달록한 말 새끼를 얻으니 이롭다는 말이다. 횐말이 검은 말을 낳으면 좋다는 것이다. 곤은 흑백점의 모습을 보여 주며 동시에 흑과 백이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형상화 한다.

ㅡ龍戰于野其血玄黃.
용이 들판에서 싸우니 그 피가 붉고 누렀다.

위의 글자에 갑골문은 기와 혈이다. 기는 바구니며 혈은 그륵에 담긴 피의 모습이다. 주역 64괘중 거친 전쟁의 과정이 살아 있는 거의 유일한 대목이다. 묵자는 이 대목을 이렇게 해석했다. 천자가 (경신일)에 하얀 용을 서쪽에서 죽였다. 검은 용은 (임계일)에 북방에서 죽였다. 묵자는 천자가 각기 정해진 날에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서 청,백, 흑, 홍,황색의 용을 모두 죽였다고 해석 한다.

천자는 하늘이다. 5룡은 세상의 모든곳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일상이다. 살고 싸우고 갈등 하는 인간의 삶의 모습 자체다. 바둑이 반상의 게임이면서 삶의 속성을 담아 내고 있는 것은 원시시대 바둑의 출발점이 이곳에 있기 대문이다. 4방위의 개념이 바둑판위서 완전 정착한 것은 13줄때이다. 13줄 바둑은 초보적인 바둑을 둘 수 있는 단개로 13줄 15줄 17줄로 발전 한다. 점복은 11줄 미만에서 기능했고 13로 발전 하며 점복은 죽간으로 경전이 되고 바둑은 반상게임으로 고정된다.

원시주역이 점복이라면 바둑의 속성인 전쟁의 치중에 의문이 들수 있다. 그러나 고대는 일상이 점치는 것과 싸우는 것이었다. 사냥과 이웃 부족간의 갈등과 조정이 고대인의 삶의 전부였을 것이다. 주역의 이 8괘속에 바둑의 위기십결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한가지 례로 예괘에 利建侯行師.가 있다.

제후(민는 바)를 세우고 군대를 일으키면 이롭다는 뜻이다. 아생연후살타, 바로 그것이다. 다른 례는 시간 낭비다.

갑골문은 상형문자다. 불과 기백의 문자로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 해야 했던 고대 사람들에게 갑골문으로 표현한 것은 중요한 일일것이다. 사무형(史巫亨)은 모두 샤먼과 제사 의식을 위한 글자다. 길(吉)도 같은 의미다. 그런 중요한 글자 기백중에 口,韋,其,石이 있다. 바둑을 꾸미는 완전한 셋트가 다 가추어져 있는 것이다.

주역은 동양의 모든 책의 원조다. 주역은 갑골문의 원형이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다. 주역앞에서는 공자도 맹자도 주자도 모두 한 수 접고 들어 갔다. 그들이 주역을 책중의 책으로 꼽은 뜻은 다른게 아니다. 바로 주역이 담아 내고 있는 최초 문자의 원형질을 주목한 탓이다.

유교주의자들은 위기 박혁등 모든 반상게임을 긍정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바둑은 그들 성인(?)들의 외면으로 주역속에서 미아가 되어 버렸다. 바둑은 황하에서 올라온 거북의 등껍질에서 시작된 것이다. 귀갑(龜甲)은 방괘위반(方罫圍盤)이다. 반은 그릇위에 배를 부르는 형상이다. 배는 물을 건너 오는 소식이다.

거북의 등껍질에서 방사선괘(方四線罫) 위에서 점복이 떨어져 나갔고 위기로 변한 바둑판은 박혁,색, 격오. 국희등 모든 반상게임을 탄생 시킨다. 위기는 반상게임의 어머니요 왕이다. 바둑은 그 본질을 갑골문에 두고 있다. 갑골문속에 바둑의 유전자가 남아 있다. 주역은 바둑의 유전자를 보존 하고 있는 화석(化石)이다. 이 유전자를 분석할 생물학(?)자가 그래서 절실하다.


5. 8도 반상의 진실
소천의 8도 반상설은 탁견이면서도 한가지 의문을 준다. 왜 고대인들은 7도나 9도가 아닌 8도 반상을 만들었느냐는 물음이다. 그러나 이 의문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주역 8괘가 그것이다.

주역은 주나라때 완성된 점서다. 은허점사 시대에는 귀장역(주21)이 있었다. 귀장역의 흔적은 은허 점사에 수없이 많다(주 22). 장정량은 아에 한권의 책을 썼을 정도다.

8괘는 고대인들의 시간과 공간 관념의 반영이다. 고대인들은 시간성과 공간성을 '춘하추동동서남북'으로 이해를 했다. 이 시공간 관념의 이해를 기호로 표시한 것이 8괘다.



▲ 복희 8괘 적용.

천원(중앙)을 중심으로한 동서남북의 배치속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고대인들의 무법에는 귀갑만이 아니라 무점이 있었다는 기록이 서경 홍범에 보인다. 거북점과 무점이 모두 사람의 뜻에 어긋날때 用靜吉用作凶이라는 것이다. 거북점이 많은 비용과 여러가지 문제를 노출 하면서 조금더 손쉽고 체계적인 무법이 강구된 것이다.

고대의 점복이 모아져 이론화되고 체계화된 것이 주역이고 보면 그속에는 무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을것은 분명하다.

주역이 유교와 도교의 사랑을 받으면서 여러 갈레로 발전을 하면서 주자에 이르러 이역체계도(二易體系圖)가 만들어 지기에 이른다.

태극이 양의(음양)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8괘를 낳고 8괘가 64괘로 되었다는 주자의 이역체계도는 고스란히 8도 반상의 모습이다.

한대의 '공안국'은 이 반상위에서 하도(河圖)설을 퍼트리고 '유음"은 홍법구주설로 주창하며 흑백점이 있었다고 한다. 8괘와 하도에 나오는 '기수'와 '우수'로 흑백점9주25)을 쳤다는 것이다.

유흠이 말한 흑백점의 의미는 무엇일까. 8도 반상에서 시전된 흑백점의 의미는 8도 반상과 흑과 백이라는 바둑 기물의 초보적 구성에 다름 아니다. 하도설이나 흑백점등은 모두 도교적인 사상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동양의 문화관을 대변하는 중국의 문화적 브랜드는 남송 시대에 대두 하여 동양 전체로 파급된 성리학이지만 실재로는 한대 이전에 있었던 유가 사상이 모태다. 그러나 성리학과 유가 사상은 정치 권력의 후원 아래 상류층의 전유물이었고 대다수 중국인의 기저에는 도교가 깊게 자리 하고 있었다.

도교는 점복, 치료, 기복을 부적이나 부수(신령스런 물)등을 이용해 치유 또는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신비주의와 신선사상의 결집체다.

도교는 노자를 신으로 내세워 동양 정신사의 중요 바탕이 된다(주25). 도교는 주역 안에서도 경방류와 참동계류의 사조를 이끌며 유교 주역파들을 압도 한다. 바둑의 기원설을 주장 하는 요순설 하도설등의 기연도 도교의 반영이다. '난가'의 전설이나 '현현기경'같은 책까지도 도교와 무관치 않다.

중국에는 한대에 식점(式占)이 있었다. 식점은 '초영수''비직'이 지었다는 역림(易林)과 비슷한 점법으로 보인다. 시점은 식반(式盤)위에서 행해져 식점이라 했다. 식반은 1972년 감숙성에서 발굴된바 있다.

돌판위에는 기하학적 무뇌가 그려져 있고 북두칠성과 12신장 그리고 별자리 28수가 그려져 있다. 샤먼은 이 돌판위에서 구하고자 하는 점괘를 얻은 것이다. 이 식반은 하도(河圖)가 출두 했다는 거북의 배갑이 발전한 모습이다.

고대인들은 황하에서 나온 거북의 배에 나있던 문양을 심상치 않게 생각했다. 그들은 이 문양을 하늘의 어떤 뜻이라 생각했다. 이속에서 고대인들은 낙서(洛書)를 생각했다.

하도는 우주의 선천적 정적인 의미인 체(體)로 보고 낙서는 우주의 후천적 동적인 의미 곧 용(用)으로 인식 하고 이것을 숫자로 표시한다.고대인들은 바로 이곳에서 흑백 곧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음양이 생겨났다고 한다.

8도반상은 거북의 배갑과 식점의 그것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하도낙서와 같은 고대의 ㅅ상도 담아 내고 있다. 그곳에 8도 반상은 도교의 신비주의도 남기지 않는다.

바둑이 점복으로 출발해 도교의 후원까지 받으며 발전해 왔다는 말이다. 점복이 모여 주역이 되고 주역안에서 태어난 도교가 접복안에서 태어난 바둑과 동질성을 느낀것은 당연하다. 상대적으로 유교는 바둑을 멀리 하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둔것도 사실이다.

8도 반상은 은나라 시대의 점법인 귀장역에서 무법을 시전 하던 도구로써 사용되던 것이다. 8도는 동양 사상의 출발인 8괘의 반영이다. 불과 얼마전까지 중국의 바둑은 4배자 바둑이었고 화점은 한국의 바둑판과 일본의 장기판(필요도 없이)에 아직도 남아 있다. 이런점에서 바둑의 화점만을 따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주26) 견해가 바둑 학자중에서 나온바도 있다.

필자는 이와같은 검토를 거쳐 다음과 같이 정리를 해본다.
가> 바둑은 오래되었다.
나> 13도 반상이라면 초보적인 현대적인 개념의 바둑을 둘 수 있다.
다> 8도 반상에서 바둑의 초기적인 형태가 나왔다. 소천탁치를 비롯한 향천충부, 장녀인등의 저명한 학자들이 도출한 위의 연구에서 필자는 다음의 논지를 제기 한다.
라> 8도 반상은 고대 귀갑을 태워 점을 구하던 초기의 무법이 진일보한 점술 도구다. 8도로 되어 있던 이 점술 도구가 13도로 확대 되며 바둑, 삽식, 탄기,등 반상 게임이 나왔다.

이 논지를 위해 필자는 위기의 문자학적 검토와 고대 점복의 결정체인 주역이 바둑의 속성을 닯았다는 점을 비교 하였고 은허점사속에서 위목의 존재를 찾아 내어 논지를 뒷받침 했다. 이 글은 조금더 완성된 논문을 위한 시안(試案)이다.


6.漢文抄錄.
圍棋歷史由來久矣.然圍棋起源硏究不足不實也.己往堯帝創造敎子丹朱何圖容成公說本蹟載在方策.其硏究不實事實性微矣.
卽圍棋會代案不足手手傍觀何哉. 1940年代日本學子'小川琢治''中國圍棋起源'發表,卓爾不郡論志而圍棋硏究典範入室.
小川圍棋起源之自古而然, 8圖盤上局戱也.本稿小川8圖盤上說,代置8圖占卜說生矣.
筆者每觀才士之所作竊有而得其用心 小川硏究其論遣辭良多質矣.
式觀元始冬穴夏巢之時茹毛飮血之世. 圍棋元始自然吉凶判斷出發筆自見解也.
爲8圖占卜說, 圍棋文字學的檢討,甲骨文占辭韋木窺明,古代占辭結集體而周易文化史的顧察圍棋起源乎.他日殆可謂曲書其妙.

주. 주 26은 본문 보다 많은 관계로 이곳에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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