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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이창호, 건강 적신호?

최근 대국 후 자주 빈혈 증세-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

진재호 바둑평론가2007-05-14 11: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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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가 흔들리고 있다. 33세의 건장한 청년 이창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어린 시절 전국우량아 선발대회에서 입상했던 선천적 건강체인 그가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다. 최근 연이은 성적 부진도 그의 건강과 연관된 것은 아닐지 은근히 걱정된다.

지난 4월 말 한국바둑리그에서 배준희와 대국하던 이창호는 대국이 끝난 후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어있는 규정을 어기고 일찍 귀가 했다. 국후 누적된 피로 때문에 도저히 인터뷰에 응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날 대국에서 TV화면에 비친 이창호의 안색이 너무 좋지 않아 팬들조차 걱정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고 한다.


건강적신호의 사례들
사례1. 06년 2월. 14연승을 기록할 만큼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던 농심배. 작년대회 최종국에서 일본의 요다노리모토와의 대국을 마친 이창호는 처음으로 빈혈 증세를 경험했다. 쓰러질 뻔했다. 그때만 해도 격정의 승부 뒤에 오는 공허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동생 영호 씨도 자신의 칼럼에서 그런 후일담을 밝힐 정도였으니.

사례2. 06년 3월 ‘광저우의 굴욕’이 있었던 작년 춘란배. 이창호는 16강전에서 천야오예를 이기난 후 심한 두통이 찾아와서 고생한 적이 있다. 앞의 사례와 비슷하게 머리가 아파오고 대국 중에도 집중하기 힘들었다고. 급히 중국병원을 수소문하여 찾아갔다고 한다. 자신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이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영호 씨는 밖으로 알려지는 것은 걱정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사례3. 지난 2월 농심배 상하이 대국에서도 비슷한 증상은 있었다. 막판 쿵제·구리를 물리치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다음 역시 정신을 잃었다. 앉았다 일어나면 현기증 증세가 누구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이런 일을 당하게 되니 퍽이나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사례4. 지난 4월 KBS바둑왕전에서 대국녹화를 마치고서 복도로 걸어가던 중 이창호는 또 잠깐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마치 빈혈환자처럼 어지럼 증세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증세로 인해 몇 번씩 고초를 치렀다.

필자가 취재한 상황만 해도 빈혈증세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때마다 이창호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한다. 심지어 MRI검사까지 받아봤으나 병원에서는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결론. 다만,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아니겠느냐는 정도의 소견만 들었을 뿐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절친한 동료기사는 이창호가 요즘 머리가 맑지 않아 정밀한 수읽기를 하기가 어렵다고 자주 호소했다고 한다. 대국이 끝난 후에는 너무 지쳐서 종종 탈진, 구토 증세를 보인다고. 따라서 이창호는 요즘 또 다시 그런 현상이 일어날 지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장기간 외유가 불가피한 외국대국이나 지방대국은 꺼려진다고.

11세 입단에서부터 곧장 스타덤에 오른 이창호. 특히 어려서부터 타이틀 경쟁에 뛰어들었고 신산, 돌부처 등의 별칭을 얻으면서부터 그는 ‘신비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와 절친한 동료기사는 20년 가까이 처절한 승부를 해 온 이창호에게 과도한 스트레스가 쌓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는 모기만한 목소리를 보유한 내성적인 스타일이었다. 늘 장시간 복기의 초대대상이었다. 같은 동료들조차 신비한 존재로 받아들여 모든 것을 ‘이창호에게 물어봐!’ 식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문제를 풀어헤치는 것에 대해 익숙지 못했다. 또한 자신의 양 어깨에 걸려있는 기대를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간접흡연, 불규칙한 식사 등 바둑계 관행도 영향
10대의 이창호는 한참 성장해야 할 시기에 ‘모진’ 대국이 참으로 많았다. 특히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치러지는 대선배와의 대국은 고통스러웠다. 4평 남짓한 특별대국실에서 타이틀을 걸고 씨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휴식시간도 없는 대국이었다. 제한시간 5시간짜리 대국을 수도 없이 두었던 어린 이창호. 그 대국이 끝나려면 밤 10시는 예사이고 심지어는 11시30분까지 간 적도 있다. 체력자체도 문제가 되었겠지만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침묵으로 보낸 시간은 고역이었을 것이다.

당시 필자는 짧은 시간이라도 대국을 중지하고 저녁휴식시간이 주어져 가벼운 요기라도 하면서 휴식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다.(월간바둑 93년 3월호-취재수첩 361로) 대국자가 원할 경우 간식이 주어지기도 하였지만, 일반인이 저녁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면 필시 중요한 지점을 통과하는 바둑이었을 터. 결국 대국자는 간식에는 손을 대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고 기억한다.

불규칙한 식사와 함께 간접흡연에 상당히 노출되었다는 것도 문제라고 판단한다. 당시만 해도 담배에 관해서는 관대했던 바둑계의 관행도 이창호의 스트레스 가운데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동료기사는 전한다. 대선배기사들이 뿜어대던 연기 때문에 괴로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창호도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80년대의 국수의 계보는 곧 골초의 계보라고 할만 했다. 따라서 밀폐된 곳에서 포연과 함께했던 시간도 이창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아야
특히 지방대국이나 해외대국 때는 이창호의 스트레스가 극심해진다고 한다. 과거에는 ‘물 징크스’가 있어서 해외대국을 꽤 싫어했다.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이창호는 초청하는 쪽에서는 오랜만에 국보가 왔으니 ‘본전’을 다 뽑으려고 할 터. 대국 이외의 기타 행사에 ‘모델’로 등장하는 것을 이창호는 몹시 꺼려한다. 오죽했으면 수많은 CF제의를 다 물리쳤을까.

싫으면 하지 않을 권리도 있고, 이창호는 이제는 당당하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위치가 되었다. 중국의 위빈은 전야제나 폐막식 같은 중차대한 행사에도 자신이 귀찮다는 이유로 불참하는 경우도 많다. 또 조훈현의 경우 수년전 전남 해남에서 왕위전 도전기를 가지려고 할 때 갑작스레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대국을 펑크내며 1패를 안은 적도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창호는 크고 작은 시합에서 단 한 번도 결석이나 지각으로 인한 기권패는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일탈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창호가 그만 탈이 난 것이다. 이제는 자기 자신을 즐기면서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 않는 담력도 키워야 한다.

국가대표 주장으로서의 스트레스도 크다
이창호는 자신이 한국바둑의 대들보라는 사실도 부담스럽다. 지금까지 성적으로 보면 계속 상승일로만 걸어왔기에 ‘이인자’, ‘하강곡선’ 등의 단어에 대해서는 익숙지 않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까지 그가 한국바둑계를 위해 노력해온 것만 해도 벅찬 감동이었으니.

최근 개인전에서 그는 많이 패하지만, 단체전에는 아직도 상당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대표선수로서 상대적으로 상금은 적지만 명예는 대단한 단체전에서는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 부쩍 선명하다. 2년 전 농심배 막판 5연승이나, 올해 농심배의 막판 2연승 등 아직까지 국가대표로서의 임무는 눈물겹도록 잘 해주고 있다.

단체전에서 한국바둑이 수렁에 빠져서 모든 이들이 그가 ‘올인’해주기를 바랄 때 그는 언제든지 출동했고 그때마다 승리했다. 그 달콤한 승리의 이면에는 한국대표 주장으로서 스트레스가 얼마나 그를 괴롭혔을까?

그 외에도 부친의 와병, 자신의 결혼문제, 성적부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 전 타이젬에서 기획했던 BIG3드림팀과 인기스타팀의 대국 당시, 그가 주최측의 자택 취재조차 거부한 사실도 최근의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주변의 시선에서 멀어져라
늘 승부사로서는 1등 인생을 살아왔기에 2등, 3등으로 내려가는 일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 스승 조훈현도 선배 유창혁도 지금은 평범한 기사로서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돌아봐야한다. 올라가는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내려오는 것 까지는 생각을 채 못해봤을 수도 있다.

병이 있다면 병을 아는 순간부터 낫는다고 했다. 일시적인 빈혈일 가능성이 일단은 제일 크다. 일단 한 달이라도 바둑이 없는 곳에서 바둑을 잊고 살아보라. 이창호가 없다고 돌아가지 않는, 그렇게 허약한 바둑계는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바둑가에서는 이창호의 ‘건강이상설’이 퍼지게 되면 내성적인 이창호가 더욱 스트레스를 받을 것을 고민하는 눈치이다. 그 또한 악성 스트레스이리라.

모쪼록 건강을 지키고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불행히도 이창호는 배우지 못했다. 반상에서 도망갈 곳이 없듯이 숨겨서 해결되는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올바른 진단 끝에 정확한 처방이 나오는 법. 그 첫 출발은 휴식이다. 20년을 쉼 없이 달려온 이창호가 한 달 정도 자신을 위해 되돌아본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신은 국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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