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전력이 같다고 가정하고 1명과 8명이 차례로 싸운다. 그렇다면 1명이 이길 확률은 2의 8제곱이니 256:1이다. 아직 여자팀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은 인정하지만, 상대가 천하의 조훈현이라면 조금 상황은 달라진다. 세상에는 객관적인 확률이나 과학적인 이론으로서 당해낼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 요즘 세간의 화제는 단연 지지옥션배이다. 시니어팀(45세 이상)과 여자팀이 ‘맞장’을 뜨는 대회방식부터가 흥미롭다. 요즘 들어 다양한 형태의 기전이 생겨나지만 ‘불완전매치’ 성대결이 시도된 것은 처음이다. 대회 초반은 여자팀들의 압도적 우위로 관심을 끌더니, 이제는 조훈현의 대활약으로 뉴스의 초점이 옮겨진 것이다. 예상을 빗나간 연승 연패 그러나 단순한 열대성저기압도 서서히 태풍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초반 3연승을 이끈 입단 6개월차 박지연(정대상·김석흥·김동엽 승), 입단 1년차 고주연(이홍렬 승리), 백지희(장수영 승) 등 세 초단은 쟁쟁한 9단진을 꺾은 것이 힘이 되었다. 따라서 점점 여자팀은 자신감으로 충만 되었고, 시니어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고작 2단인 김수진은 권갑룡 김일환을 꺾었고 본 대회 최고의 히로인 김은선은 김종준·김수장·오규철·서봉수 등 내로라하는 강자들을 꺾어 기염을 토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그가 시니어의 마지막 주자 조훈현마저 꺾었다면 올해 최고의 여자기사상은 따 논 당상이었을 것이다. 팬과 달리 전문가의 예상은 냉정했다. 심지어는 동료기사들까지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나이를 먹으며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진다”며 여자팀 편을 들고 나섰다. 작년 전적을 보더라도 여자팀이 89승72패로 앞서며. 본선멤버 24명의 성적만을 집계한 결과는 11승4패로 여자팀이 우세하다. 물론 붙어본 기사의 전적만 집계되었기는 하지만. 다만, 팬이나 전문가나 조훈현·서봉수가 대기하고 있는 후반부로 가면서 승부가 꽤나 재미있어지겠다는 정도였다. 5월까지의 결과처럼 남은 기사가 8:1이 되어버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선수들 자신도 예상치 못했다. 또한 기본기량에서 여자팀이 전혀 꿀리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여자팀은 승부에 대해 민감한 쪽이다. 따라서 거의 다 도장에서 연구회를 가지는 타입이며 막강 신예들과 계속 스파링을 하며 기량을 향상시키고 있는 중이다. 다만 시니어들은 살벌한 전장에서 반발 짝씩 후퇴한 사람이 절반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이민진·고주연 등은 유창혁 도장에서 거의 출근 도장을 찍는다. 또 박지은·이영신 등은 양건도장에 나와서 연구회를 가진다. 또한 나머지 여자선수들도 저마다 입단한 도장에서 끊임없이 기보를 놓아본다. 아직은 공동연구의 힘을 느끼고 산다는 점에서, 여자팀라고 굳이 분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신예기사인 것이다. ‘남자신예’에 비해 조금 기량이 달리는 풋풋한 ‘여자신예’이다. 평소 보급 활동을 주로 하다 ‘평소실력’으로 싸운 시니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초속기라는 점도 무시 못 한다. 시니어는 역전패를 많이 당했다는 점이다. 서봉수의 패배도 그러하지만 장수영·김수장·이홍열·정대상 등의 대국이 거의 다 역전이었다. 시니어들은 한번 기울어진 형세를 돌이킬 힘이 부족한 반면, 팔팔한 신예들은 기울어진 바둑을 역전시킬 힘이 있다. 역전된 바둑을 유지할 힘이 있다.
여자팀의 진짜 실력을 가늠할 리트머스지 그러나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이며, 마지막 용 그림에 점을 찍을 것인가. 여자팀은 6월에 들어서자마자 내리 4연패를 당했다. 혹시 서봉수가 예상외로 쉽게 넘어갔다고 해서 조훈현도 쉬울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여자팀은 비로소 긴장하기 시작한다. 기세로만 뭉친 팀은 한 번 꺾이기 시작하면 계속 쓰러지는 법이다. 구심점을 점점 잃어간다. 상대가 천하의 철권 조훈현이라는 이름 석 자에 많이 꿀리는 느낌이다. 초조감은 정관장배 5연승의 이민진이 쉽게 물러나자, 고참 기사 윤영민도 불계패, 급기야 국내최강자라고 할 조혜연 마저 물러났다. 4연패한 대국 모두 불계라고 할 만큼 조훈현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간 여자팀은 시니어팀에게 거의 매번 종반 들어 행운의 역전승으로 승리를 가져갔지만 유독 조훈현에게는 먹히지 않은 것이다. 조혜연이 등판하기 전, 또한 남아있는 기사로 봤을 때 이영신이 조혜연의 앞에 나오지 않을까 예상을 했지만 흐름을 넘겨주면 안 된다고 보고 조혜연이라는 강타자를 앞에 냈다. 그러나 의미 없는 장애물신세가 되었다는 점은 앞으로 남은 기사에게 상당한 데미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것은 조훈현과 루이 박지은·김혜민·이영신 뿐이다. 조훈현은 남은 여자팀원 중에서 루이와 가장 대국을 많이 했을 뿐(5승3패) 박지은(1패), 이영신(1승) 등 입단 10년을 넘긴 기사들마저도 변변찮은 대국기회조차 없었다. 박지은이 조훈현에게 거둔 1승은 2000년도의 바둑왕전이라는 속기전이다. 박지은과 루이와의 대국이 타이틀의 분수령이 될 듯하다.
20년 동안 국가대표에이스로서 활약한 조훈현의 클로저로서의 능력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제 아무리 뛰어난 클로저라고 해도 상대는 중심타선으로 들어선다면 그 끝을 자신할 수 없다. 아직은 아웃카운트가 4개나 남아있는데 말이다. 과연 조훈현의 바람을 가르는 카리스마를 보게 될 것인가. 여자팀으로서는 일단 15일에 이영신이 등판한다.
|
총 댓글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