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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쯔배]

박영훈 '이창호 9단을 이겼잖아요'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 박영훈 인터뷰

정연주2007-07-11 20: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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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끓어 오르는 것 보다 은근히 끓어 오르는 것 같다. 펄펄 끓어 금세 싸늘해 지는 것 보다 서서히 끓어 오래도록 따스함을 유지하는 것. 박영훈이라고 하면 '은근한' 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바둑 쪽으로 말하는 거죠? 그럼 좋죠. 제가 성적을 갑자기 뚜렷하게 내는 스타일은 아니니깐."

3년 전 기자와 박영훈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목적으로 만났다. 트레이드마크 초승달 눈 웃음과 함께 후지쯔배 우승 인터뷰를 했다.


식상하지만 가장 먼저 묻고 싶고, 꼭 물어 봐야하는 질문. 제20회 후지쯔배 우승 소감이 궁금했다. 박영훈 9단은 예상했다는 듯이 싱긋 웃으면서 차근차근 대답을 한다.
"물론 기쁘고요. 상대가 이창호 9단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미가 더 있는 것 같아요. (기자 : 왜요?) 이창호 9단한테 이긴것이 잖아요. 아무래도 세계 최강……."

이창호 9단 이야기가 나와 내친김에 준비해간 질문 순서를 바꿔서 묻는다. 결승전에서 이창호 9단과 대국하는 것을 알고 어땠을까. 상대전적에서도 6승 10패로 뒤지고 있었지 않는가.
"크게 다른 점은 없었어요. 오히려 장쉬 9단보다는 마음이 편해요. 한국기사라서 크게 부담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예요."
은근히 궁금했던 내용이다. 일본 기사와 결승 대결이면 마음이 불편한가보다. 회원들이나 바둑팬들은 한·일전, 한·중전이 벌어지면 소리 높혀 한국을 응원하지 않는가. 오로지 개인전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국가의 명예를 걸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었다. 마침 대답을 해준다.
"이창호 9단과 대국했을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복기를 해보니까 역전승이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끝내기 들어갈 때만 해도 제가 나빴어요. ( 기자 : 이창호 9단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많이 보인다고 하는데, 대국을 해보니 무엇이 달라진 것 같던가요.) 음…. 예전보다는 마무리 부분에서 실수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생애 첫 우승을 한 기전에서 또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 박영훈 9단에게 후지쯔배는 어떤 의미일까.
"3년 전에 첫 우승을 했잖아요. 그 때가 더 떨렸던 것 같아요. 더 긴장됐고요. 저한테는 아무래도 첫 우승을 안겨준 대회이기 때문에 후지쯔배는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대회예요. 또 두 번이나 우승을 한 것 보니깐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세계대회에서 세번째 우승이다. 생각해보니 박영훈 9단은 한국 주최기전 말고, 외국 주최기전만 가져오고 있다. 괜히 제8회 삼성화재배에서 조치훈 9단에게 2대1로 져 이마의 땀을 닦던 박영훈 9단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LG배나 삼성화재배에서 좋은 성적 내고 싶죠. 그런데 맨날 떨어져요. 특히 LG배는 거의 1회전에서 탈락했던 것 같아요. 올해 LG배는 이미 끝났으니까 삼성화재배에서 열심히 해보려고요."

박영훈 9단의 우승으로 한국은 10년간 후지쯔배를 장악했다. '한국이 10년째 우승을 해서 후지쯔배 없어지는 것 아냐?'라는 이야기가 농담삼아 돌고 있다.
"그것 때문에 항상 한국 선수들이 불안해 하고 있어요. 그런데 10년째 우승을 해도 아직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계속하지 않을까요?"
그도 그럴 것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는 대회가 잉씨배와 후지쯔배 둘 뿐인데, 그나마 잉씨배는 4년에 한번씩 열리지 않는가. 3년전 후지쯔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군대 문제와 관련이 있었던 유창혁 9단과의 준결승전 대국이 기억에 가장 남는다고.

당시 인터뷰 내용이 생각난 김에 또 묻는다. 그렇다면 후지쯔배 우승한 대국이 가장 기억에 남겠어요?
"(한참 생각 후) 제16기 기성전에서 최철한 9단한테 최종국에서 반집 이겼을 때가 가장 기억이 남아요. ( 기자 : 왜 일까요? 예상외의 대답인데요.) 최종국이었고 뭔가 마지막까지 어려웠던 것 같아서요. 참, 후지쯔배 4강에서 유창혁 9단한테 이긴 것이요. 어려웠던 대국이었고요, 군대 문제와도 상관이 있었기 때문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을 물을 때 '너무 나빠서 혹은 너무 좋아서 기억에 남는 대국'을 꼽아 달라고 했다. 박영훈 9단은 나빴던 대국은 너무 많아서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박영훈 9단. ^^

세계대회 결승전이 단판 승부라는 점에 가끔 바둑팬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이번에도 단판승부에 관한 바둑팬들의 꼬리글을 볼 수 있었다. 모 아니면 도.
"번기 대결이었으면 졌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이창호 9단이 더 강하니깐…. ( 기자 : 개인적으로 단판승부와 번기승부 중 선택하라면?) 단판승부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번기승부는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이왕이면 한번에 승부를 보는 것이 좋아요."
이창호 9단이 더 강하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인가 이창호 9단 만큼, 아니 더 계가를 정확히 한다는 말이 있다.
"계가는요, 프로기사면 다 되요. 프로면 다 할 수 있어요."

세계 대회 정상에 올랐으니 국내기전에서도 욕심을 내봐야 할 것 같다. 기성에 올라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아닌가.
"일단 GS칼텍스배 본선에 올라갔으니까 도전자까지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 기자 : 아~ 농심신라면배도 남았잖아요? 작년에 4연승했는데.) 농심신라면배는 대표로 출전하고 싶은 기전이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조가 좋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박9단도 기성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요즘은 판도가 많이 바뀌어서 국내대회 다관왕이 힘들어 지고 있다.
"물론 지금 잘두는 신예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저도 이미 쫓기는 입장이라고 생각을 해요. 확실히 실력이 평준화 되어서 한 명이 독주하는 시대는 잘 안나올 것 같아요. ( 기자 : 만약에 독주를 한다면 어떨까요? ) 지금은 이세돌 9단이 유력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열심히 해봐야죠. ( 기자 : 독주 보다는 평준화가 좋은 것인가요?) 글쎄요~ 제가 할 수만 있다면 독주가 좋은 것 아닌가요?"

후지쯔배에서 우승을 하지 않았다면 물어 볼 수 있는 타이밍을 찾기 힘들었을 질문을 해야겠다. 한국리그에서 박영훈이 주장으로 있는 대방노블랜드팀의 성적이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1장인 박영훈 9단, 2장인 한상훈 초단은 다른 기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유독 한국리그에서 성적이 나쁘다.
"저 같은 경우에는 속기가 약해요. 한상훈 초단 같은 경우에는 다른 대회에서 성적이 좋은데 앞으로 잘 하겠죠. 저도 그렇고. 이러다가 내년에 3장으로 뽑힐지도 몰라요…. ^^
( 기자 : 속기전이 부담이 되나요? ) 속기전에서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 당연히 실력이 약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고요. 제가 수를 빨리 못보는 것인가요? ( 기자 : 계가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요? 수를 빨리 못 본다는 것은 이상해요~) 계가가 되는데, 계가를 해 보면 다 불리해요. 하하~"

3년 전에는 어린왕자가 아니라 어린황제라고 불러야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느덧 3년이 지나서 이제 입단 8년차다. 이제 '어린'이라는 단어는 빼야겠다.
"개인적으로는 40살 까지만 기사 생활을 하고 싶은데, 그때 가봐야 알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요. 20살에는 35살 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날 보니 이창호 9단이 조금 있으면 35살 이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늦췄어요.
옆에 있던 서봉수 9단, 인터뷰 내용을 듣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린다. "40살에 은퇴라고? 나도 은퇴 시기를 놓쳐버렸는데. 힘들기로 말하자면 조치훈 9단 같은 사람이 힘들지. 이틀동안 바둑 두려고 해봐. 골병들어. 골병."  박영훈 9단은 수줍은 듯 웃는다. 그리곤 '계속 질문하세요'라는 눈빛으로 기자를 본다.

40살까지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장기 목표는 지금 보다는 더 실력이 좀 더 늘어서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예요. 단기간 목표는 올해이미 LG배가 끝났으니 남은 삼성화재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어요. 또 국내대회에서도 타이틀 한두개 정도 따고 싶어요."
세계 무대에서 우승을 한 박영훈 9단이 실력이 더 늘어서 정상에 올라가고 싶다고 말한다. 정상에 섰지만 더 발전할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조화를 이룬 박영훈 9단을 7월 11일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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