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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시평]

이세돌, 종장(宗長)이 되다

제자 키우겠다고 선언한 이세돌

이청 바둑사학자2007-08-07 10: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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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이 바둑의 유토피아는 아니다.
조선 사람 '이덕무'는 바둑의 폐해와 중단 없는 바둑의 흥기(興起)를 경계했다. 왕실은 말 할 것 없고 사민(四民)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바둑에 빠져 책 읽는 사람이 없고 일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 했다. '이덕무'는 바둑을 공맹의 학풍을 저어하고 공맹의 도에 도전하는 노자 장자류에 비교하며 지탄을 가한다. '이덕무'는 자신의 친구들중에 바둑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 아예 가축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며 혀를 차기도 한다.

성호 '이익'은 바둑에 몰두 날밤을 새우는 사람들을 아예 미친놈(?)이라고 했다. 다산 '정약용'은 현감(군수)들이 바둑과 시짓기에 빠져 업무를 아전들에 일임할 정도로 나태하다고 했다. 또 '이규경'은 사람들이 온통 바둑에 빠져 다른 일을 하려고 하지 않고, 행세께나 하는 사람들과 교제를 하려면 바둑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이덕무, 정약용, 이익, 이규경 등은 모두 조선 후기를 살았던 저명 인사들이다. 그들은 매우 극단적인 자세로 바둑을 평하고 있지만 역으로 따져보면 당 시대 중요한 논쟁의 하나로 바둑이 기능했다는 반증이다. 평자들은 바둑이 오락과 예기의 범주를 넘어 시대의 발전을 저어 하는 지경에 이른것을 말하고 있다. 바야흐로 조선의 바둑은, 금기서화를 말하는 고상한 취미와 서민들의 단순 오락의 차원을 벗어나 사회 문제로 비화 할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이학규'는 바둑 한판에 만냥을 잃고도 태연한 사람을 보았다고 했다. 가는 곳 마다 바둑을 두며 다투는 관경이 흔했다고 한다. 서로간에 횐돌을 잡는 것을 놓고 심각(?)하게 싸우고 판이 끝나면 진 사람이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이 안쓰럽다고도 한다. 이학규는 당대의 지성들이 우려한 지나친 바둑의 흥기(興起)를 조금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조희룡'은 너도 나도 소매속에 '대소철망', '권련번'등을 넣고 다니며 바둑수에 몰두한다고 했다. 이 책들은 손에 들고 다니기 쉽게 만든 작은 책자인 기보집이나 사활집으로 생각된다. '유본학'은 디테일한 이학규보다도 더 생생한 기록을 하고 있다. 유본학은 당 시대를 살아가던 바둑의 고수들의 삶을 전한다.

유본학은 바둑을 잘 두면 세상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 기록한다. 작은 고을의 이름 난 선기(善碁)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을 몰고 다닌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한번 보는 것을 소원하고 그와 한 판 바둑이라도 두었다 치면 두고 두고 자랑거리라 했다. 유본학은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바둑 고수들을 비교하며 어떤 문장(文章)도 서예가도 그것이 가능하냐 묻는다. 유본학은 국기(國碁)는 아예 언급을 회피할 정도라 한다. 당대의 바둑 고수들이 오늘날로 보면 특급 연예인 대접을 받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겠다.

조선 시대의 바둑이 금기서화를 운운하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전 조선인의 도락이었다는 것은 조선실록의 완전 해제로 파악되었다. 위로는 국왕으로 부터 대신은 물론 약방(내의원) 환관 궁녀들까지 바둑은 퍼져 있었고 저자 거리의 일반 백성들까지 광범위하게 유행하고 있었다. 바둑의 지나친 흥기는 궁안에서 부터 저 강진 바닷가의 아전들까지 미쳐 실록에 많은 문제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 바둑의 흥기가 지각있는 지성들의 눈에 사회적 폐해로 간주 될 정도로 조선 바둑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2. 가장 잘 보일 때가 가장 잘 가르 칠 때이다.

조훈현·이창호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 바둑의 고수의 반열에 들어선 이세돌이 제자를 키우겠다 선언을 했고, 재능있는 몇몇 학생들의 지도를 시작함으로 그 선언을 실천하고 있다.

스물네살의 세계적 기사(碁士)가 가장 성적을 내고 있는 시점에서 제자를 키운다는 것은 의외다. 그것을 받아 들이는 바둑계나 펜들의 반응도 기대반 우려 반으로 엇갈린 듯 하다. 그런 세상의 관심에 정작 이세돌은 담담하다.

이세돌의 내심은 '가장 잘 보일때가 가장 잘 기르 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중국 갑조리그를 참가 하며 어린 천재들의 육성에 광분(?) 한 중국을 보고 나름으로 느낀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생각 속에만 놓아 두지 않고 실행에 옮긴것은 과연 이세돌 답다.

이세돌의 바둑은 자유스럽다고 한다. 형식에 얽메이지 않고 가장 자연스런 사유로 반상의 절대 고수가 되면서 바둑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이다. 싸우면서 이익을 취하고 끊임없이 상대를 괴롭히며 타협을 구하는 이세돌의 바둑이 성적을 내면서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옛날에 내제자를 받아 들인다는 것은 유가(儒家) 사문(寺門)의 문을 열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 때는 세상을 향해 크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 직접 포효하지 않고 거꾸로 산수(山水)간에 묻혀 한 두명의 제자를 키워 그들로 하여금 당 시대만이 아니라 역사(歷史)를 통해 포효했다. 유가의 '공자'가 그렇고 불가의 '혜능'이 그렇다. 학문이나 종교는 도제식 사제(師第) 관계에서 가장 빛나는 계승 발전을 해왔고 서예, 그림, 도자기 등도 이 범주에 있어 왔다.

가장 좋은 스승이 가장 좋은 제자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조훈현·이창호를 통해 학습한 바 있다. 좋은 스승은 좋은 제자를 키운다는 말을 우리는 이미 '맹자'를 통해 알고 있다. 맹자는 거처하는 환경이 기상을 다르게 하고 먹는 음식이 신체를 다르게 한다고(居移氣養移體) 했다. 맹자는 이 말에 보태어 환경이 관건이라 했다.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을 달리 표현한 말인가.

이세돌은 타고난 승부사다. 그는 한국 바둑의 어제와 오늘을 가장 정확하게 읽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이로 인해 바둑의 철학과 문화적 층의는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한국 바둑의 오늘과 내일이란 문제를 파악하고 대처 수단으로 미래의 절대 고수의 발탁을 생각해낸 것은 과연 탁월한 직관이라 하겠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세돌이 지금의 시점에서 쌩뚱 맞아 보이는 제자 키우기에 나섰겠는가. 우리는 바로 이점을 주목하고 박수를 보낸다.

이세돌은 일가의 종장(宗長)이 되었다. 바둑 가문(家門)이 하나 생긴 것이다. 그 가문에서 이세돌은 어떤 제자를 키울것인가. 바둑계와 펜들은 이세돌로 인해 한가지 기다리는 즐거움을 더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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