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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불혹의 일지매를 만나다

도장에서 만난 유창혁 9단 인터뷰

진재호 바둑평론가2007-09-16 16: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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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걱정 없는 낙관파인 사람처럼 깨끗한 이미지. 조금은 흐느적거리듯 느긋한 걸음이지만 그에게는 철저함이 숨어있다. 바둑에서는 곱상한 이미지와 달리 '이때다' 싶으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목표물을 한방에 박살을 내고야 마는 대단한 파괴력을 지녔다.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일지매'란 별명이 참으로 어울리는 사나이다.

분당에 위치한 유창혁 도장,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주인공이 나타나질 않는다. 이윽고 11시 50분 쯤 도장 문이 스르르 열린다. 기다리고 있던 필자를 보자마자 지각이라도 한 듯 걱정스럽게 묻는다.

"우리가 몇 시에 약속했죠?"
"시간은 얘길 안했죠. 그냥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한 정도···."

'이크, 에크' 택견 겨루기를 보는 듯 느긋해 보이고, 싫은 소리 못하는 맘 좋은 아저씨가 유창혁이다. 늘 울려대는 벨소리 때문에 진동으로 해놓고 있다는데, 정작 그 진동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그러니 미리 약속을 해 놓은 사람은 '확인전화'를 받지 않으니 약속이 펑크가 날까봐서 조바심이 생기는 것도 인지상정.

10년 전 필자가 결혼을 한다고 소식을 전할 때도 매한가지였다. 날짜가 다가와서 다시 한 번 연락을 하려했지만 그는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유명한' 유창혁을 하객들이 자랑스럽게 소개시켜줄 요량이었던 필자로서는 적잖이 걱정이 되었던 추억이 있다. 그러나 그때도 비록 휴대전화는 받지 않았지만 달포전의 약속시간을 잊지 않고 정확한 시간에 찾아와 주었다.

"새삼스레 인터뷰는 무슨···. 밥이나 먹으러 가요."
"팬들이 원한다니까요···?"

쑥스러운 듯 소매를 잡아끄는 그를 기어코 소파에 앉혀서 사진촬영도 할 겸 잠시 시간을 번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근황이랄까···
다 아시면서···. 하루 종일 도장에 파묻혀서 아이들이랑 지내죠. 어쩌다 TV해설도 가끔 있고, 더 가끔 대국이 있고···. 거의 매일 도장에서 살아요. 약속을 딱히 하지 않아도 저를 만날 수 있어요.

축하한다고 해야 할 지, 그저 그렇게 넘어가야 할 지 모르겠군요. 오랜만에 삼성화재배에서 8강에 진출했는데···, 요즘 (신예들이) 많이 버겁죠?
8강에 들어본 것이 오랜만이 아니라 세계대회 출전한 자체가 오랜만이었죠. 요즘은 랭킹 순이니까 통 출전하지 못하죠. 그러나 이렇게 예전에 성적을 냈던 탓에 가끔 기회는 주어지는데, 그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해야지요. 늘 그렇지만 한 판 한 판 두다 보면 모르는 것이니까요?

그는 '겁도 없이' 우승이 목표라고 한다. 늘 프로기사는 우승을 목표로 하면 대회에 출전한다고 덧붙인다. 목표가 8강, 4강하는 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그와 같은 기백이 세계대회 6회 우승의 금자탑으로 이루어졌으리라. 불혹이 되어도 변함없는 패기의 일지매였다.

그도 과거에는 큰 승부에 강했고 큰 판을 자주 이겼다. 강자에게는 특히 강했다. 이창호가 정점에 다다른 1990년대 후반에도 세계대회의 고비길에서 자주 4강에서 좌초된 기억이 있다. 덕분에 이창호는 한동안 세계대회 결승에서 패한 적은 없다. 오히려 그 이전에 패했을망정.

8강까지 올라가리라고는 다들 별로 예상은 못했을 것 같은데요.
물론 재미를 위해서는 좋은 제도입니다만, 지명선택제라는 것이 세계대회에서는 맞지 않는 면도 있어요. 두 눈 똑 바로 뜨고 있는데, 쿵제가 나를 선택한 것은 바로 '제가 만만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쿵제는 물론 세계대회에서 많이 패해 나를 택했다고는 했지만··· 그래서 오기가 발동했을 수 있습니다. 유창혁은 32강전에서 쿵제를 이기고 16강전에서는 허영호를 이겼다.


다음 8강전은 구리인데, 자신 있습니까?
늘 자신은 있습니다. 구리와는 이겼다 졌다 했지요. 그러나 지금 와서 과거의 전적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다만, 구리가 공인된 강자라는 면에서 좀 부담이 될 뿐입니다.

반갑다. 이런 자신 있는 모습에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던 게 아니겠는가. 잊고 지내던 그 배짱 두둑함이 불혹을 넘겨서도 여전하다는 것이 차라리 신선했다. 베테랑다운 한마디는 또 이어진다.

"8강이나 준우승이나 32강 탈락이나 매 한가지 아니겠습니까?"

개인통산 1000승을 1년 반 전에 기록했습니다. 20년 넘게 이룬 결과여서 상당히 애착이 갈 텐데 오히려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많이 섭섭하실 텐데···?
처음엔 저도 몰랐죠. 국내에서 4명밖에 없다고 해서 그게 중요한 기록인지 알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룬 선배기록자들도 가만히 있는데, 새삼스레 잔치를 벌일 일도 아니고···, 조용히 있었죠.
다만, 1년 반이나 지난 후에도 본인에게 통보도 해주지 않고 언론에 흘린 것은 좀 못마땅하지요. 차후에라도 한국기원의 관계자분들이나 책임 있는 분의 공식 해명이 있었다면 그래도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음엔 이러한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지요.

난데없는 질문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용트림하기엔 늦은 나이인가요?
50대까지도 독야청청했던 조국수님같은 분도 계시니까 말씀을 드리기가 뭣합니다만, 비슷한 또래인 마샤오춘이나 요다노리모토 같은 경우에도 성적이 전성시절에 비해서 초라할 정도인데 저라고 예외가 있겠어요?
다만 일찍 사그라지지 않기 위해 노력은 합니다. 늙는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품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죠. 품위 있는 모습이란 권위만 찾아서는 아니 되고, 후배로서 선배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이제는 그럴 나이도 되었지요.
20대와 40대가 바라보는 바둑이 다를 리는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형편이 달라지니까 다르게 보일 뿐이라고 봅니다. 어릴 때는 성적도 좋고 하니까 그쪽에만 신경을 썼는데 요즘은 제자도 기르고 TV해설도 나가고 하니까 좀 더 바쁘게 지내면서···, 바둑을 다각도로 본다고 할까요.

책임지는 모습이라고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요, 도장을 열면서 세계를 제패하는 후학을 길러내겠다고 했는데 지금도 유효한 것입니까? 3년 정도 되었는데 아직 입단자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여전히 유효하죠. 그리고 입단자 배출은 2년 남짓 더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 3년인데 입단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입단자수는 저희 입장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죠. 다른 사범님 손에서 키워진 입단자는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보다 저의 손때가 뭍은 진정한 입단자를 배출해야겠지요. 그리고 입단이 문제가 아니라, 성적을 낼 수 있고 나아가서 저를 극복할 수 있는 프로를 양성하는 것이 궁극의 꿈입니다.


도장운영자로서 최근 바둑의 위상은 어떠하다고 보고 있는지요?
열기가 많이 식었지요. 그러나 절망하고 비관적인 생각을 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부터라도 개혁할 수 있는 것은 개혁을 해야지요. 저도 이제는 선배의 입장이고 책임질 위치이니까(유창혁은 한국기원 상임이사이다.) 요로의 얘기들을 많이 듣고 실천할 방안을 찾고 있어요. 한국기원 내에 바둑발전위원회를 가동하고 지속적으로 의견개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까 빠뜨린 질문이 있는데, 지금 성적을 내는 젊은 선수들을 보는 느낌을 진솔하게 한마디 한다면?
정확한 예가 될지는 모르지만, 마라톤이 순위의 스포츠인가 기록의 스포츠인가를 생각해보았죠. 순위만을 고집한다면 기록 단축이 더디게 될 것입니다. 지금 바둑계를 보면 순위경쟁에만 너무 치우친 느낌입니다.
중국이 한국과 대등한 이유도 거기서 찾아야 합니다. 중국은 점진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우리가 더 이상 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창호를 척척 이겨내는 실력이라면 밖에서도 잘 싸워야 할진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죠. 중국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정체되어있다는 것이죠.
일례로, 박영훈은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비교적 오래도록 그 기량을 유지하고 있고 기량이 서서히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박영훈보다 훨씬 파괴력이 있었던 최철한은 요즘 슬럼프죠. 또 이세돌은 승부가 강했는데 요즘은 기량도 만개하고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연구생들도 기량의 근본적인 발전에 힘쓰는 게 아니라 순위경쟁에서 일단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고···
속기가 많아지다 보니 인터넷바둑으로 연습을 하는 경향도 생겨나고 있다지요. 그러나 유행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삼성화재배에서 16강전에 12명이 올랐다가 4명만이 8강전에 진출했던 이유도 어느 정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 유창혁 도장에서 바둑공부를 하고 있는 박영훈 9단(왼쪽)과 최원용 5단.

인생의 굴곡을 아는 승부사
바둑가에서는 인생을 잘 아는 사람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다. 지금도 유창혁이 정상에 올랐던 기사 중 '유일하게' 대화가 잘 소통되는 편이다. 돈이 생기면 주변사람들과 술도 곧잘 마셔주는 사람이다. 당시만 해도 방성에서 맥주광고도 하던 시절이어서 얼굴이 꽤나 알려졌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10년 전 쯤 된 이야기. 유창혁, 사진기자와 필자 등 3명은 이벤트 대국에서 생긴 유창혁의 거마비를 여하히 탕진할지 고민하다, 당시 유행했던 '야타족'을 '구경하기'위해 디스코텍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25세 이하만 입장시킨다는 문구가 선명했다. 유창혁이나 기자는 비교적 나이보다 어려 보이니 문제가 없는데, 필자의 풍채나 몰골은 35세 이하라고 해도 출입이 불가능했다. 갑자기 일행 중에 낙오자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자, 유창혁은 "저를 형이라고 부르세요!"라며 힌트를 주었다. 물론 패스였다.

유창혁은 인생의 굴곡을 많이도 아는 사람이다. 태어나기는 천재로 태어났지만 자라기는 일반인처럼 자라난 사람이다. 그래서 일반인들과 참으로 잘 어울리는 타입니다. 한국기원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드높고 우리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도 곧잘 대작하고 기분 나면 가라오케도 자주 간다. 그러면서도 세계대회 6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 도장에서 유창혁 9단과 같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최규병 9단의 수업 모습.

행복한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그와 연구생시설을 같이 보낸 친구를 지금까지도 절친한 친구로 생각하는 의리있는 사람이다. 도장사범 모두와 점심을 같이 먹는다. "호흡이 맞아야 하잖아요. 오히려 식사시간이 사범들과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이지요."

"아들이 몇 살이죠?"

식사를 마친 후 딱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며 다시 도장을 찾았다. 가족 얘기를 하려고 하자, '눈치 9단' 유창혁이 먼저 말을 자른다.

"미안합니다. 아직은 밝히고 싶지 않아요."
" · · · "

가장 팬들이 궁금해 하는 물음이라고 했거늘, 차마 유창혁의 눈을 바라보면서 어떤 고집쟁이라도 그를 꺾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겨우 4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필자가 준비해간 마지막 물음은 가정을 새로 꾸밀 시기가 되지 않았냐는 것.

유사범! 아직 다 태우지 못한 정열을 반상위에 모조리 쏟아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 이루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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