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경 사람. 1983년 2월 3일 출생. 6살에 바둑공부 시작. 12살 충칭팀 가입. 1995년 입단 성공. 국가소년팀에 선발. 2006년 4월 9단으로 승단. 1995년에 입단한 구리는 국내에서 20여개의 우승을 했고 세계대회인 LG배와 춘란배에서도 타이틀을 땄다. 구리의 부친 구쥐산(古巨山)은 중경시 지리 선생님이시며 바둑을 특별히 사랑했다. 구리가 6살 때 아들을 중경 기원에 보냈으며 그 뒤로 아들과 대회장에 동반하는 등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쥐산은 항상 아들 옆에 있어 언제 어디서든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한 답변을 해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 부친을 떠올리는 구리는 흐르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이후 구리는 연패를 당하며 컨디션이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컨디션을 되찾으며 9연승을 거뒀다. 4개월 동안 구리는 저조한 성적, 컨디션과 싸우다가 천천히 회복을 하고 있다. 구리는 얼마전 인터뷰에서 “나는 컨디션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고 있다.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나는 전관왕을 할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컨디션을 회복중인 구리와 만나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 대회에 출전하기 전이나 후에 대국 컨디션이 좋다는 말을 하곤 한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어떤 상황이든 침착하게 응수 할 수 있고, 자신감이 있다. 컨디션이 좋으면 일부러 자신감있게 행동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감 있는 응수가 나타난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완전히 반대다. 아주 간단한 수도 볼 수가 없다. - 부친상을 당한지 4개월이 지났다. 컨디션은 어떤가.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다. ( - 5월달 부터 4개월 사이에 20여번 대국을 했다. ) 많이 졌지만 최근에는 괜찮은 정도다. 한동안 컨디션이 너무 나빠서 '이대로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까지 들었다. - 최근 진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국은. LG배 16강에서 한국의 신예 한상훈에게 진 것이다. 지고 나서 비난의 소리가 많았다. '구리 9단이 한국의 초단에게 패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봤다. 단위가 개인의 실력을 나타내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바둑팬들은 이런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이런 글을 읽을 때 마다 타격을 받는다. 이기고 싶다는 생각에 조급하게 두다보니 잘 두지 못했다. 또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도 여유가 없었다. 패배는 정상적인 일이었다. - 하하하, 구리에 대한 비평 기사들은 모두 나 같은 기사들이 썼다. 너무 신경쓰지 말라. 그렇다면 객관적인 관점으로 바둑 내용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떤가. 내가 보기엔 모두 비평으로 보인다. ^^ 하지만 비평이 없다면 발전 할 수 없다. 좋은 말만 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 창하오에게 고맙다고 해야하지 않는가.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창하오에게 이긴 후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이후 9연승을 거뒀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창하오한테 고맙다고 말했었다. ( - 혹시 창하오가 구리를 도와주고 싶어서 져 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는가. ) 그렇지 않다. 어떤 상황이든 최선을 다해서 대국하는 것이 프로기사다. 우리는 모두 프로사다.
-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강자를 만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강자를 이기면 자신감이 회복될 것 같은데. 구리는 어떤가. - 만약 한·중·일에서 랭킹을 통합으로 발표한다면 몇 위에 오를 것 같은가. - 3년이 넘도록 중국랭킹 1위를 지켜왔다. 이번에 중국랭킹 발표에서 3위에 올랐는데. - 창하오는 일찍 결혼을 했다. 구리는 여자친구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빨리 결혼해서 어머님께 손자를 안겨드리고 싶지 않은가. 또 어머니가 결혼하라고 재촉하지 않으시는가. - 노력을 하지 않고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같다면서 구리를 '천재'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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