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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시평]

바둑의 최고수를 다투는 칭호의 의미

국수, 기성, 본인방의 의미

이청 바둑사학자2007-10-23 14: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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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본인방은 일본에서 나온 바둑의 최고수의 존칭이다. 명인, 본인방의 역사는 에도(江戶) 시대, 그 상한 연대가 4백년을 넘지 않는다. 세계 바둑사의 바둑 고수에 대한 예우로 그만한 존칭도 별로 없다. 명인, 본인방은 국가적으로 관리를 하던 거의 최초의 바둑 존칭이다.

그러나 최초의 바둑의 기왕(碁王)을 말한 기록은 중국에 있다. '포박자'는 갈홍(284-364)이 지은 책이다. 갈홍은 동진 시대의 도가 사상가로 바둑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포박자에는 10여건의 바둑의 기록이 있어 연구자들을 흥분 시킨다.

故善圍碁之無比者側謂之碁聖.

갈홍은 바둑의 상대가 없을 정도로 수가 높은 사람을 기성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성으로 엄자명과 마은명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엄자명, 마은명은 모두 오나라 사람들이다. 오나라는 손책의 기보가 망우청락집에 전할 정도로 바둑이 흥했던 나라다. 이 나라안에 바둑의 상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고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손책 시절에 나온 '위소'의 박혁론에 도급의물(賭及衣物)이라 하여 당시 바둑이 옷가지나 물품을 걸고 하는 유행이 있었던 것도 증거한다. 바둑의 역사가 깊고 보면 바둑의 고수들에 대한 관심도 많았던 것은 짐작이 된다. 물론 옛 사람들이 바둑이나 박혁등에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공자가 박혁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한마디 한 것이나 이 말에 장단을 친 맹자는 아예 음주 박혁은 부모를 모시지 않는 불효라 말한다. 공자, 맹자가 말한 박혁(실제로 이런 연구가 있다)이 바둑이 아니라 해서 바둑은 좋게 생각했을 것이란 생각은 말자. 맹자는 음주 박혁을 혐오하면서도 박혁의 고수를 인정하는 발언을 해서 혼동을 준다.

- 오늘날 '혁추'는 소수다. 어떤 일이던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맹자는 당대에 박혁의 최고수로 알려진 혁추를 들어 어떤 분야의 1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혁추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박혁의 고수를 말하는 존칭이다.

맹자가 말했다 하여 혁추는 그날부터 사람이 되고 바둑의 전설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한다. 문헌적으로 똑 떨어지는 바둑의 기록을 남긴 사람은 양웅(서기18년 몰)이다. 양웅은 방언이란 책에 위기(圍碁)를 기록한다. 공자 맹자시대에 바둑의 기록이 없다하여 바둑은 그때 없었다는 연구자가 있다. 그러나 공자의 저술인 춘추의 해설본인 '좌전'에 보면 바둑의 모습이 선명하다.

- 오늘 영희군(君)이 임금 보기를 바둑 두는 자가 돌 보듯 시원찮게 봅니다. 바둑 두는 자가 거기부정(擧棋不定)을 모른다면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지 못 할 것은 분명 합니다.

이 기록의 거기부정을 살펴보면 당대의 바둑의 수가 어느 정도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슷한 시대의 고고학적 유물로 나온 바둑판이 13줄이라 하여 거기 부정을 할 정도로 바둑의 수는 없었을 것이니 이 기록은 후대의 첨삭일 것이라 하는 연구도 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바둑의 수라는 것은 18급도 거기 부정을 할 수 있는 것이지 1급만의 전유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좌전을 말하는 것은 좌전 이전에 바둑은 있었고 여전히 두어졌다는 말을 하고 싶은 때문이다. 똑 떨어지는 위기를 특정한 문헌이 없다하여 그 이전의 바둑을 부정하는 연구는 인정 할 수 없다. 어쨌든 3세기 오나라의 바둑의 초고수를 기성이라 할 때 바다 건너 저편에는 '국수'가 있었다.

마한과 백제가 병립 하던 시대 백제의 왕 개로는 한 바둑의 고수를 '국수'라 칭하며 역사의 한 기록을 남긴다. (果國手也 삼국사기 백제본기)

25사는 마한과 백제를 한 국가로 보았다. 백제가 마한의 한 국가라 특정하며 고구려 부여의 별종이란 설을 보층하는 형식이다. 백제에는 탑과 절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박혁과 바둑이 넓게 퍼져 있다고 했다. 백제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4세기다. 국수를 말한 기록은 5세기다. 종교가 한 지역에 침투하여 공동체의 주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2~3세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종교 학자들의 연구를 비교하면 마라난타가 불교를 들여 왔다는 기록은 4세기 기록이 백제 불교의 시초는 아니었을 것이다.


▲ 한국 바둑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국수전은 50주년을 기념해서 역대 국수들에 대한 손 조형물 증정식을 한 바 있다.

국수의 기록은 8세기 삼국사기에 한번 더 나온다. 신라 효성왕이 중국의 바둑 고수를 만나는 대목이다. 포박자는 기성외에 '선위기'라 하여 바둑의 고수를 호칭 하는 또 다른 말을 한다. 당나라 시대 당의 고수들은 모두 국수라 칭 했다. 중국에서 국(國)은 나라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국수는 한반도에 들어와 비로서 영예로운 바둑 고수의 존칭이 된다. 국수는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말까지 통용된다. 그러나 조선에 와서 국수를 바둑계에서 먼저 버린다. 조정이 정책적으로 바둑뿐만 아니라 화가 서예가 소리꾼 온갓 기술자의 자인들을 국수라 칭하며 관리에 나서자 바둑계가 선기(善碁)라는 호칭을 쓰며 여타 종목들과 차별을 둔 것이다.

조선 초 중기 바둑의 최고수는 선기라는 존칭으로 불렸다. 세조는 궁안에 재추(宰樞)를 두고 선기들을 숙직하게 하며 수시로 불러 바둑을 두기도 한다. 재추는 원래 일반 관원들의 숙직소로 왕과의 일대일 대면 금지라는 정치적 제도 이후 없어진 기구다.

재추를 필자가 처음 바둑의 왕실 위기대(圍碁隊)라 주장하자 근거를 대라는 질문이 있었다. 재추는 세조 때 선기들을 재추에 두고 불렀다는 기록이 유일하다. 그러나 서거정의 필원잡기에 '재추에 마승에 능한자와 조관에 차로 장기를 잘 두는 자가 있다'는 기록을 보면 재추는 조금 더 연구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선기는 다시 조선 말기에 와 국기(國碁)를 거쳐 다시 국수로 바뀐다. 재미있는 것은 화가, 서예, 금속, 공예 등 여타 분야가 국수를 외면하자 바둑계가 다시 국수를 회복하여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화단이나 서단(書檀) 명창등 분야에서 국수는 낯선 말이다. 오직 바둑계만이 자랑스런 이름이다.

한·중·일 3국의 바둑의 최상층 존칭어는 국수, 기성, 본인방이다. 기성 본인방은 일본이 선점해서 사용하고 있다. 기성은 바둑을 잘 두는 성인이다, 이렇게 알고 있다면 잘못이다. 성(聖)은 원래 '쇠경'을 뜻 하던 한자다. 쇠경은 나팔의 일종이다. 바둑으로 자랑 할 만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 성이 성인의 뜻을 얻은 것은 춘추이후의 일이다. 국수, 기성, 본인방 동양 3국의 기왕의 상징의 연원을 따져 보면 역사가 깊다. 세상의 어떤 문화적 분야에서 이런 연원과 족보가 있는 분야가 있을까. 국수(國手)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멋지고 합당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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