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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수첩]

cec222·므네모시네-추억은 청각으로 남는다

타이젬 음방 가족들을 만나다

김종서 작가2008-03-06 1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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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낯선 간이역이나, 새벽 플랫홈, 그리고 먼 지평으로 뻗은 철길을 생각하면 떠나고 싶은 충동에 몸살을 앓는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구름처럼 가벼워 자유로운 것이지만 석양처럼 쓸쓸한 것이기도 하다. 떠나는 순간부터 낯익은 모든 것과 결별해야 하므로.

카테리나 행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남으리

카테리나 행 기차는 내 기억 속에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썰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영혼이 통하는 이와 오래도록 함께 하길 원하지만 우리네 삶은 언제나 각자의 외길로 뻗어있다. 그래서 이별은 숙명과도 같다. 여행은 이별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아픈 것 아닐까?


S#2. 음악은 생산이다 - cec222
어느 날, 그는 한 음방에서 우연히 그리스 여가수 아그네스 발차가 부른 이 노래를 듣게 된다.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

그 선율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맥이 탁 풀렸다. 뭐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강렬한 영감이 겨울 마른 바람에 산불 번지 듯 척추를 훑고 내려갔다. 엔지니어 계통 무역업을 하고 있던 그는 그 순간부터 하던 일을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원대한 여행의 음모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여행은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다락방에 꼭꼭 숨는 것이었다. 펜티엄 급 컴퓨터와 음악장비를 세팅하고 소리의 바다를 떠돌며 파일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소리의 바다에서 떠돌아다니던 월드 팝들을 국적 별로 장르 별로 깔끔하게 분류하고 헤아려보니 무려 40만 곡. 그때부터 타이젬 대국실에 월드 팝 전문 음방을 차렸다.

cec222.
2트리플로 통하는 이 아이디를 여러분들께서도 한 번쯤은 보셨으리라. 벌써 1년 가까이 음방을 운영해왔으니까.

타이젬에는 조건 없이 기우들을 위하여 음악을 들려주는 음방장들이 무수히 많다. 도대체 그 분들은 무엇을 위해 그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방을 마련하는 것일까?

cec222님의 경우는 이유가 없다. 굳이 대답하자면, 어느 날 좋은 선율에 감전되어 바쁜 삶의 바퀴를 멈추고 음악 속에서 나의 존재와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던 것처럼 음방을 찾아 온 누군가가 아름다운 월드 팝의 바다를 유영하면서 생기를 얻기 바랄 뿐이다.

그렇다면 먹고 사는 문제는? 당연히 통속적인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졸업하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으나 과연 이 모습이 나를 위한 삶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행복하다. 당분간은 이렇게 음방에서 같은 느낌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청각의 여행을 함께 하고 싶다. 이런 시간도 생산이라고 생각한다.”


S#3. 레테(망각)의 샘, 므네모쉬네의 샘
레테의 샘물을 마시면 모든 것을 잊게 된다. 삶의 고단함에 지친 이들에게 특효약이다. 아픔을 잊기 위해 망각을 원하지만 사랑하는 모든 것 또한 잊어야 하므로 두려운 샘물이다.

므네모쉬네의 샘물을 마시면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다. 므네모쉬네란 이름은 기억의 여신이며 그녀의 아홉 딸 중에 음악의 여신 뮤즈가 있다. 그래서 기억이 음악을 낳은 건 아닐까?


▲ 므네모쉬네와 제우스는 사랑을 나누어 아홉명의 뮤즈 여신을 낳았다. 1630년대에 니콜라 푸생이 남긴 ‘아폴론과 뮤즈 여신들’.

타이젬의 므네모쉬네.
그녀는 울산에 산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진 이후 친정의 노모와 생활해왔다. 그러다 어머니가 2년 전 돌아가셨다. 모든 게 덧없게 느껴져 출가를 결심했으나 막상 결행하려면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에 필이 꽃혔다. 혼자 사는 방에 선율을 가득 채워 놓으면 레테의 샘물을 마신 듯 모든 아픈 기억들을 떨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타이젬 음방과 맺어졌다. 하루의 절대 시간을 음방에 투자하고, 음방의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이 그녀가 가장 아끼는 사회라고 했다.

그녀가 지키는 철칙 하나.
친구들의 신청곡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찾아서 들려준다는 것.

망각과 기억의 경계선에서 서성이던 그녀에게 음악은 세상으로 통하는 비상구였다.


S#4. 음방 가족들. 만나다
지난 3월 1일 오후 6시. 반포 고속터미널 인근 음식점에서 타이젬 기우들이 모임을 가졌다. cec222, 므네모시네 두 음방장을 비롯해 월드 팝을 좋아하는 기우들이 늘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오프라인으로 만난 것이다.

cec222님이 유황오리를 준비하고 울산에 거주하는 므네모시네님은 고래고기를 마련해왔다. 늘 두 음방에서 좋은 팝을 듣는데 음식까지 대접받아서야 되겠느냐며 음방 애청자들이 2차 노래방 프로그램을 자진해 연출한다.

음악 이야기와 애창곡 하나씩 나눠부르고 자정이 되기 전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악수를 나눴다. 멀리 강원도에서 충청도에서 경상도에서 올라 온 이들이지만 따뜻하게 만나고 아주 쿨하게 헤어지고 있었다.

“무척 만나고 싶었지만, 사실 만나선 안 되는 거예요. 음방 식구들은 오로지 음악으로만 소통하는 게 옳다고 믿었거든요.”

그러나 어디 우리들의 소통이 그리 말처럼 단순하던가? 그리우면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술 한 잔, 노래 한 곡 돌려야 직성이 풀리는 법.

그들의 만남은 올드 팝처럼 부드러운 여운을 남긴 채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음방에서 우르르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바둑과 음악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소사이어티가 타이젬에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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