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뉴스 기보 상점 새소식

[기획기사]

영원히 도전할 그가 아름답다

끝없는 도전자 조치훈-일본기성전 최종국서 야마시타에 아름다운 패배

진재호 바둑평론가2008-03-21 09:38:01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아! 조치훈…
그는 실패했지만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쉽지 않은 나이에 쉽지 않는 승부였다. 끊임없는 불굴의 도전의지를 만천하에 과시한 그는 결국 승자였다. 7080세대의 꿈이요 희망이었던 조치훈. 그의 이번 '52세의 도전'에 우리는 모두를 건 영웅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이제껏 바둑 한판을 두고서 이틀씩이나 관전했던 기억이 필자에겐 없다. 1승3패 후 제5, 6국을 잡아내자 꺼져가던 응원의 불씨를 확실히 지폈다. 예의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집요한 투혼을 보이면서 대역전의 희망을 불태웠으나, 뒷심부족으로 그만 막판에 다 잡은 타이틀을 놓치고 말았다.

조치훈의 위대함을 보다
'조치훈'이란 이름을 떠올리면 '열혈승부사'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 '3패 후 4연승' '휠체어 대국' '불사조' 등 치열함이 묻어나는 표현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렇다. 치열무쌍한 승부사 조치훈은 바둑을 목숨으로 여기며 현해탄 건너에서 바둑 입국을 완수한 자랑스러운 대한의 바둑인이다.

조치훈은 도전자로 결정된 뒤 "다시 7번기 무대에 오르게 되어 행복하다. 7번기는 나의 바둑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팬들에게 더욱 성장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50대인 그는 분명히 '성장'이라고 했다.

한편 야마시타는 도전기에 임하기 전 "내가 바둑을 시작했을 당시 이미 초일류 기사였던 선배와 7번 승부를 벌이게 되어 영광이다. 상대 전적은 내가 유리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계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결코 뒤질 맘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상대전적에서 10승14패를 기록해 다소 뒤지고 있었던 조치훈. 그러나 7번기라면 괴력을 발휘하는 그이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일본십단전에서 3대2로 승리를 거둬 야마시타에게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조치훈이었으니. 더욱이 조치훈은 "야마시타와의 성적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기성전 제6국 복기. 조치훈 9단(왼쪽)은 1:3으로 뒤져있다가 내리 2연승을 거둬 3:3을 만들고 승부를 최중국(제7국)까지 미뤘다. (사진출저-일본기원)

기성전 도전기 시리즈
1국에서 조치훈은 늘 그렇듯 선취점을 내준다. 야마시타에게 140수만에 불계패를 당한다. 7번 승부를 하나의 시리즈로 보고 있는 그에게는, 그리고 슬로스타터였던 그에게는, 일반화된 패배였다. 그는 1국은 탐색전이라고 보는 듯했다. 따라서 팬들도 패배의 그림자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다.

71회 우승 중에 29회가 3대 기전에서 획득한 것이다. 역대 기성전에는 8승3패의 성적을 거둬 ‘7번기의 제왕’으로 불리는 조치훈은 “7번승부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8년만의 대결이라 감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감을 찾게 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면서.

2국에서는 조치훈이 설욕했다. 247수만에 백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역시 조치훈'이란 찬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5번기로 좁혀졌다. 3국에서 조치훈은 134수만에 돌을 던져 아직은 완전한 감을 찾지 못한 듯했다. 그는 7번기에 대해 "정신력·기술·체력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혀 아직은 완전한 컨디션이 아닌 듯했다. 그래도 팬들은 7번기의 조치훈임을 잊지 않았다. 조그마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4국에서도 패했다. 타이틀 획득이 힘들어졌다. 지난 패배보다는 수수(數手)는 조금 더 길어졌으나 207수만에 불계패라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3번의 패배가 전부다 불계패이고 수수도 짧았다는 것은 뭔가 풀리지 않는다는 징후였다.

오히려 야마시타가 맘을 다잡는다. "앞으로 1승이다. 이를 달성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했다. 조치훈은 한 수에 2시간여를 고심하는 등 최선을 다했으나 끝내 풀지 못한 실타래처럼 패수만 늘어갔다. "흐름이 깨졌고 이후부터 잘 풀리지 않았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맘을 비웠다. 나이 52세에 기적을 바란 팬들이 과분한 욕심이었음을 인정하고 '그냥 그렇게' 관전했다. 5국에서는 16시간 투혼을 보인 끝에 조치훈은 막판을 즐기며 신승을 거둔다. 310수까지 가면서 흑3집반승을 거두고 1승을 추가했다. 종합적적 2승3패.

어느새 익숙한 이름인 배수진. 조치훈은 뒤가 없는 마지막 판을 즐긴다. 연이어 벌어진 6국에서 지천명에 다시 쓰는 '조치훈 신화'인 양, 또 다시 야마시타를 꺾고 3대3 동률을 만든다. 248수 4집반승. 종합스코어 3승3패.

그러자 다시금 한일 양국에서는 들끓었다. 그가 1981년에 획득했고 3년 뒤 낙마한 다음, 1994년도에 또다시 획득했던 그 기성전. 그러나 7국에서는….


▲ 조치훈 9단(왼쪽)과 야마시타게이고 9단의 기성전 최종국 대국 모습. (사진출처-일본기원)

조치훈의 바둑인생 반추
어쩌면 조치훈은 인생 자체를 드라마틱하게 살아왔다고 할 것이다.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6세의 고사리 손으로 현해탄을 건너 물설고 낯선 땅에 정착한 소년 조치훈.

500여 일본 프로기사들 중에서 군계일학으로 올라서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5년 정도지만 그들과의 무수한 단련 속에서 가슴까지 차돌처럼 단련된 인간 조치훈. 11세의 나이로 일본 최연소 프로가 된다.

그리고 18세 땐 승부사로서 최초의 좌절을 맛본다. 첫 타이틀에 대한 실패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1975년 일본 프로10걸전을 우승하여 최연소 타이틀 홀더가 된다. 19세 타이틀 홀더면 지금으로는 이창호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리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였다.

24세에 명인에 오를 땐 늠름하게 성장하여 미숙함은 딴 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1980년 대망의 명인을 쟁취하며 일본 일인자에 오른다. 24세에 이룬 메이저리그의 완전정복이었다.

29세엔 커다란 시련을 겪었고 원점에 서서 다시 스스로를 바라다보았다. 1986년 기성전 타이틀 대국 때 불의의 교통사고에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타고 대국장에 나타나 필생의 라이벌 고바야시 고이치의 기를 질리게 했던 그가 조치훈의 모습이다.

통상 이 정도의 이력서라면 프로로서는 99%의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치훈에게는 아직도 써야 하는 이력이 있다. 40대에도 정상의 일각을 붙들어 매면서 그의 이름 석 자를 빼놓지 않고 있더니만, 50대의 조치훈이 이런 반전을 이룰 지는 아무도 상상해 보지 않았다.

지금은 세계 바둑의 흐름이 단일화해 가는 과정이라 조치훈의 성가에 대해 솔직히 좀 과소평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30대 유명기사도 이창호 창하오를 빼고 나면 드문 시절에 40대도 아니고 50대 기사가 타이틀 보유자로서 버티고 있다.

52세의 그가 일본 최정상을 넘보다 실패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인생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알 수 없다. 조치훈은 그의 바둑이 그러하듯 그 인생도 특정한 모델이 없다.


▲ 조치훈 9단.

나는 도전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번 도전기에서 1:3으로 밀리던 조치훈은 초인적인 투혼을 발휘하며 거푸 5·6국을 따내 기적의 초석을 다져놓자, 일본 팬들은 "조치훈이 기성에 오르는 것은 메이저리거인 이치로가 50대에 타격왕을 차지는 것과 같다."며 그의 분투를 치하했다는 소식이다.

조치훈은 현재 기성전 외에도 십단전에서 다카오신지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는데다 NHK배 결승에 올라 장쉬와의 승부도 앞두고 있어, 약속대로 팬들에게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번 실패를 슬퍼하거나 되짚어 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이다.

현재 일본 바둑계를 주도하고 있는 장쉬·다카오신지·야마시타게이고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조치훈은 2008년 남은 시간동안 72번째 타이틀 획득을 위해 또 매진할 것이다. 비록 야마시타와의 대국은 패했지만 남은 두 젊은이를 돌려보내야 하는 조치훈이다. 끊임없이 도전해야만 살 수 있는 조치훈이 아름답다.

총 댓글수: 0새로고침

0/150자등록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