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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수첩]

우정과♡, 울지 않는다

'♡추억♡'아버지와 '감각적의'어머니

contents2008-03-21 18: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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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1. 도화동 당구장

인천 도화동에서 수봉공원으로 올라가는 길모퉁이 허름한 건물 3층에 당구장이 하나 있다. 당구대는 5개에 불과하나 그나마도 손님이 없어 항구도시 변두리 상권의 쇠락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당구장을 운영하는 부부의 표정은 어쩐지 여유가 가득하다. 이 정도 규모의 당구장으로 일가족이 생활할 수 있을까 싶지만 벌써 1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청소년들의 흡연을 허용치 않는 배짱 영업을 고집한다니 주변 다른 당구장에 비해 경쟁력도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하여도 주인 내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오전에 당구장으로 나란히 출근해 자정을 넘기고 귀가한다. 손님이 아주 많은 것도 아닌데 부부는 종일 붙어 생활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두 끼 식사도 해결한다.




이 허름한 당구장의 주인 내외가 바로 타이젬 대국실의 터줏대감 ♡추억♡ 9단과 감각적의 9단이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 ♡추억♡ 9단은 우정과♡ 9단의 아버지고, 감각적의 9단은 어머니다. 이쯤 되면 인천 도화동 당구장의 비밀을 여러분들께서도 짐작하시리라. 이 당구장은 영업장소를 빙자한(^^) 프로기사 비밀양성소라는 것.

아니 당구장에서 무슨 바둑공부를 한단 말인가? 아무리 둘러봐도 비좁기 만한 당구장인데, 출입구 반대쪽에 내실이라는 조그만 글씨가 보인다.

S#2. 비밀의 화원

내실의 문을 비틀고 여는 순간 말 대신 감탄사가 튀어 나온다. 아!
두어 평 남짓 되는 아담한 공간에 바둑 판 하나와 바둑 책으로 가득한 서가가 보인다.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풍경은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화원에 다름 아닐 터. 그윽한 향기가 밀려온다.



바로 이곳에서 우정과9단이 소년 시절부터 바둑을 연마해 프로기사로 성장했고. 지금도 매일같이 타이젬 대국실을 누비며 중국의 강자들과 기량을 겨루는 현장이다.

사법고시보다 어렵다는 프로기사 관문 아니던가? 그래서 바둑에 재능을 지닌 영재를 제대로 키우려면 그 부모들은 거의 인생을 올인하다시피 던져야 하는 게 정설이다.
♡추억♡, 감각적의 부부 역시 그렇게 올인했다.


15년 전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은 당구장 영업 때문에 밤늦게 귀가하는 부모들을 기다리면서 TV에 푹 빠졌었다. 그때 심야시간 대에 편성된 바둑 프로그램이 꼬마를 유혹했다.
흑백 바둑돌이 딱딱 소리를 내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광경에 휠이 꽂힌 것이다.

"저 바둑을 배우고 싶어요."

꼬마가 그렇게 조르자 부모는 난감했다. 집 근처에 바둑학원이 없고 먼 데로는 보내기 어려워 대신 김수영 바둑비디오테이프 6권을 사주었다. 테이프 전집을 사자 조남철 국수 휘호가 새겨진 바둑판 세트까지 선물로 도착했다.




꼬마는 그날부터 비디오테이프가 닳아지도록 리와인드해 감상하면서 혼자 바둑을 공부했다.
몇 달 후 꼬마는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바둑의 수순을 전부 암기했다. 하도 아들이 신통방통해서 부모는 급기야 바둑학원을 찾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학원 사범이 예사롭지 않은 기재라면서 특별교육을 시키겠다고 자청했다.

그 사범으로부터 딱 1년 사사한 뒤 꼬마는 스승과 호선으로 두는 1급이 되었다. 그리고 해태 배 전국어린이 바둑대회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하고 전바협 주최 대회에서 1회부터 3회까지 내리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한국기원 연구생이 되었고 중학교 3학년때 대망의 프로기사 면장을 받았다. 유년 시절 바둑에 정조준하고 일직선으로 소년기를 달려 청년 문턱에 전문기사가 된 우정과♡. 이 비밀의 화원에 그 아름다운 청년의 순수한 꿈이 배어있는 것이다.


S#3. 네모 위의 동그라미

♡추억♡, 감각적의 부부는 종일 당구장을 지키나 감각은 내실로 향해 있다. 두 대의 컴퓨터가 각자의 몫이다. 두 대의 모니터에 나란히 타이젬 대국실이 보인다. 아들의 대국 뉴스를 추적하는 레이더이기도 하고, 바둑계의 동향을 감지하는 풍향계이며, 우정과♡를 사랑하는 타이젬 기우들과 소통하기 위한 광장이다.

라이브 시절부터 6년 넘게 우정과♡ 아이디를 쓰며 인터넷 바둑을 두는 아들의 모든 대국을 부부가 지켜본다. 손에 땀을 쥐고 승부의 호흡을 따라가며 아들의 컨디션을 체크한다.

세상에 이런 부모가 또 있을까? 어렵게 조그만 당구장을 운영하면서도 아들의 꿈을 위해 인천에서 서울까지 수없이 함께 왕래했고 풍성하게 지원해주지 못한 안타까움 때문에 오늘 인터넷 대국 한 판까지 숨죽이며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을 아들은 잘 안다.

2006년 상반기 우정과♡는 다승과 승률에서 1위를 달리며 가공할 성적을 냈다. 한국 리그 KIXX 팀 선수로 선발되어 우승 트로피도 안았다. 우승하던 날 엄마의 핸드폰에 우정과♡의 문자가 찍혔다.

"엄마, 우승했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엄마 편하게 모실게요."

그 문자 몇 줄에 엄마는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다.


"연구생 때 당구 큐대로 아들의 엉덩이를 때린 적 있지요. 도무지 독기가 없어 진보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6조에서 승급을 하지 못하고 지고 온 날 녀석이 바보같이 전철에서 계속 찔끔찔끔 눈물을 짜는 겁니다. 그 꼴이 하도 속상해서 매를 들었어요. 바둑 그만 두라고."

아버지 ♡추억♡은 그때를 회상하며 큐대를 만지작거린다.

"서른 대 이상을 맞으면서도 녀석이 바둑을 두겠다고 하더군요. 그 날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입단을 했습니다."

그러자 엄마 감각적의가 눈살을 찌푸린다.

"피이, 100대는 때렸을 걸요."

"아냐, 서른 대 정도야."

부부의 기억은 일치하지 않는다. 사랑의 매는 그 날 이후 사라졌다. 지금 아들과 아버지는 무슨 문제든 당구 내기로 해결한다. 진 쪽이 무조건 이긴 쪽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식이다. 그래서일까? 우정과♡는 바둑계 최고의 당구 고수로 통한다. 그 당구도 인천에서 연마한 것이니 염도를 따져 무엇하랴? 아버지 ♡추억♡은 아들에 관해 무조건 너그럽지만 당구의 승부에 관해서 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당구대는 사각이며 공은 원형이다.
바둑판도 사각이며 돌은 원형이다.
고로 당구는 바둑과 다르지 않다.


tygem/김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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