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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수첩]

바둑 순정파(純情派)-나리 9단

대학원서 바둑소설로 학위 받아

김종서2008-05-14 1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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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바둑이 대학으로 간 까닭은?

5월 6일, 명지대 용인 캠퍼스. 축제 시즌을 맞아 학생들의 표정은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바둑학과 강의실. 20여 명의 대학생들이 '바둑문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문득 바둑문학이란 장르가 따로 연구할 만큼 넉넉한 텍스트를 보유하고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든다. 강단에 선 바둑문학 담당 강사는 학생들과 구분이 안갈 정도로 젊고 여려 보인다.

"크게 기대하진 않았는데 이 번에 여러분들이 과제로 제출한 바둑 시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어요. 바둑에 관한 깊은 성찰도 보이고, 자신만의 독특한 바둑철학을 담은 작품도 눈에 띄더군요. 바둑에 우주를 비유한 스케일 큰 작품도 있었어요. 여러분들의 열정과 고민이 바둑 시를 통해 아주 잘 표현된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녀가 학생들에게 경의를 표하자 학생들의 눈빛에 생기가 감돈다. 칭찬은 죽은 대마도 살린다고 했던가? 바둑문학 수업의 열기가 고조된다. 학생들과 함께 바둑문학을 위해 호흡하는 그녀의 타이젬 이름은 '나리 9단'이다.

학문 차원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한국의 '바둑소설'을 파고들어 대학원 논문주제로 삼고 석사 학위를 받아 화제가 되었던 주인공이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모교 바둑학과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리9단과 제자들은 허물없는 선후배 사이며 친구나 다름없다. 그녀는 학생들의 고민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바둑학과가 생긴지 10년째, 그곳 출신 졸업생들의 진로를 살펴보면 바둑 관련 회사들(잡지사, 사이트, 바둑TV)에 30여 명 남짓 진출했고, 바둑보급사로 바둑교실 쪽에 진출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바둑열기가 예전 같지 않아 바둑교실의 경제가 침체되어 전망이 밝지 않다고 한다.

"프로기사들이 바둑에 관한 전문가들이지만 대학에서 바둑 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다른 한편으로 분명히 전문가인데 아직까지는 바둑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요. 인정받을 수 있도록 우리들이 노력해야겠죠."

그녀의 말에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 묻어난다. 한국 바둑이 프로기사들의 영웅적 승전 퍼레이드를 통해 강국의 위치에 올라섰지만 사실 바둑문화의 전통과 시스템은 일본에 비해 두텁지 않고 대중들의 관심도는 중국에 비해 엷은 편이다.

한국기원의 프로기사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바둑 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바둑문화의 저변을 확장하고 바둑계의 파이를 창의적으로 키우는 게 급선무일 터. 그래서 나리9단이 택한 길은 막막한 바다의 항로지만 언젠가 수평선 위에 하얗게 빛나는 부표를 발견할 것이다.

S#2. 바둑 주변인(周邊人)

그녀가 바둑소설을 섭렵하며 논문을 쓰던 시절, 필자를 찾아왔었다. 타이젬에 연재했던 [승부사]를 통해 유저들과 어떻게 소통했는지 알고 싶다고 물었다. 대화 도중에 '바둑 주변인'이라는 말이 나오자 갑자기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이슬이 한 방울 고였다.

"헉, 왜 그래요?"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감정이 북 받혀서......"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투명하고 예민한 아가씨였다. 바둑에 모든 것을 걸었으나 입단하지 못하고 바둑계 언저리에서 야생해야 하는 주변인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녀 자신도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마음 고생을 많이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권갑룡 바둑교실에 입문했다. 중2때까지 눈부시게 기력이 향상돼 프로 입문을 꿈꿀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여류입단대회에 나가 지금은 프로가 된 현미진, 권효진 등을 꺾고 2위를 차지했는데 하필 그 해부터 입단 자 쿼터가 2명에서 1명으로 축소되는 바람에 문턱에서 돌아 나와야 했다. 좌절감에 떨며 울기도 무던히 울었었다.

한 번 가로막힌 입단의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일반 계 고교에 진학했고, 그 뒤로 바둑을 망각해버렸다. 푸른 잎사귀처럼 빛나던 사춘기 전부를 바둑에 쏟아 부었는데 돌아온 것은 상처뿐이었으니까.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진액은 다른 곳에서 찾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고3때 명지대에서 바둑학과를 창설했다는 소식을 듣고 최면에 걸린 것처럼 지원서를 쓰고 말았다. 그토록 원망스런 바둑이었건만, 그래서 영원히 잊고 싶었던 바둑이었건만 몸 깊숙한 어느 곳에 바둑혼의 뿌리가 화석처럼 묻혀있다 슬그머니 새싹을 내민 것이다.

그렇게 바둑학과에 진학한 그녀는 4년 동안 바둑학도로서 바둑 학의 정의를 찾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문예창작학을 복수전공으로 택해 바둑과 문학의 접목을 시도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대학원에 올라가 국내에 발표된 41편의 바둑소설을 샅샅이 찾아내고 분석하면서 그 안에 녹아있는 바둑의 속성과 가치 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바둑 콘텐츠의 확장이야말로 바둑의 대중화를 이끌 수 있는 중요한 도구라고 확신한 그녀는 앞으로 직접 바둑소설을 집필하겠다는 포부를 쑥스럽게 밝혔다.

"저도 주변인 의식을 갖고 있어요. 솔직히 콤플렉스 맞아요. 그렇지만 사실 경계선은 어디에도 없는 거 아닐까요? 잘 나가는 프로기사들조차 가끔은 스스로 바둑계의 중심에서 벗어나있다는 소외감 때문에 몸서리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어디에 있든 자신이 쾌활한 의욕으로 바둑을 사랑하면 곧 중심인데 그걸 몸에 익히기가 참 어렵거든요."

S#3. 바둑에 바치는 순정(純情)을 위하여

나리꽃의 꽃말은 '순결'이다. 옛날에 순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처녀가 나리꽃으로 피어났다는 전설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나리 9단의 아이디는 권갑룡 사범이 직접 지어 준 이름이라고 한다. 그녀의 이름 '강나연'에서 연상했겠지만 권 사범이 애 제자 소녀로부터 나리꽃의 이미지를 받은 건 아닐지.

아무튼 나리9단의 바둑 순정은 유별나다. 바둑의 지층 깊숙이 탐사해 본 경험이 있기에 각별나고, 바둑의 뜨거운 마그마에 화상을 입어봐서 오히려 애틋해 보인다. 타이젬 기보에 저장된 나리9단의 전적은 9단답다. 한때 여포처럼 용맹했던 힙합전사 9단과 맞장을 떠서 한칼을 먹인 적도 있으니 짱짱한 9단인 셈이다. (지금은 다른 아이디로 바둑을 둔다는데 9단 버티기가 힘들다고 고백했다.)

대학에 출강하고 바둑 매스미디어에 해설자로 활동하면서 타이젬 대국실에 자주 들르지는 못 하지만 틈틈이 타이젬의 콘텐츠를 검색하는 게 취미라고 한다. 우리들의 공간에 이러한 바둑 순정파 친구가 존재한다.

바둑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세계제패, 타이틀 획득이 궁극의 길일까? 끊임없이 탐색하다 보면 우리들이 지향하는 아름다운 바둑세계의 윤곽이 언젠가 보이리라. 나리9단은 그 탐색대의 첨병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중이다. 바둑을 사랑하다 못해 바둑을 먹고 바둑에 빠지고 바둑에 미치다가 끝내 361로에서 길을 잃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순정에 박수를 보낸다.

(P.S) [유저수첩]은 바둑계의 포커스를 그라운드에서 관중석으로 돌리고 싶은 코너입니다. 바둑뉴스를 보면 언제든지 일류기사들의 동향은 확인할 수 있지요. 적어도 타이젬이란 사회에서만큼은 주체가 유저들인데, 유저들은 항상 불특정다수의 수신자 입장에서 바둑계의 소식을 듣기만 합니다.

바둑계란 범위에 바둑애호가들을 포함시켜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바둑계의 현안에 즉각 발언해 여론을 일으키는 유저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타이젬의 주인공인 유저들을 소개하는 일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 공간을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친구, 타인에게 바둑을 통해 위안을 주는 친구, 어느 곳에선가 바둑문화에 기여하는 친구, 바둑 때문에 울고 웃는 친구들, 그 모든 유저들이 타이젬 1면 톱 기사로 차례차례 소개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죠. 주위에서 참 괜찮은 분 발견하시면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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