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도 이제는 스포츠인데 농구에서 3점 슛이 들어가면 기부를 하는 예처럼 유명기사가 1승을 거두었을 때 일정액을 기부하면 바둑의 인식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5년 전 바둑인의 상가(喪家)에 들러서 몇몇 프로기사와 담소를 나누었을 때 필자가 뱉은 얘기 한 토막이다. 바둑계도 이제는 팬들이나 국민들에게 보다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방도를 세웠으면 한다는 의미였다.
농구의 경우 서장훈 선수가 덩크슛을 1개 넣을 때마다 암환자들에게 기부금 10만원씩 낸다든지, 지금은 은퇴한 정인교 선수가 3점 슛을 한 개씩 넣을 때마다 몇 만원씩 적립하여 ‘사랑의 3점 슈터’라는 별명을 얻은 모습을 보며 바둑을 오버랩시켜 본 상상한 것이다.

▲ TV바둑아시아선수권전 결승에 진출한 이세돌(왼쪽)과 조한승은 상금 전액을 쓰촨성 지진 피해자에게 기부했다. |
칭찬받을 이세돌·조한승의 쓰촨성 기부
미니 세계기전인 TV아시아선수권 결승에 오른 이세돌 조한승 두 입단 동기가 상금 전액을 중국 쓰촨성 지진 피해자에게 기부하여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우승, 준우승 여부와 관계없이 우승상금은 250만엔과 준우승상금 50만엔 등 300만엔(한화 약 3,000만원)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
결승전에 앞서 이세돌은 “아직까지 한 번도 기부를 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상금을 받으면 기부를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오랜 친구인 조한승도 이에 선뜻 동의했다. 1995년 나란히 입단한 동기인 이들은 바둑계에서는 처음으로 세계대회 상금전액을 기부한 기사가 되었다.
이세돌은 덧붙여서 “진작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아내에게 한국을 떠나오기 전 혹시 내가 우승하게 되면 기부할 예정임을 알렸다. 아마 우승을 못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기부했을 것.”이라며 기부의지가 확고함을 재차 밝혔다.
그 뿐이 아니다. 중국 갑조리그 쓰촨팀의 이영구도 얼마 전 1만 위엔의 성금을 전달할 뜻을 밝혔고, 을조리그에 출전해서 7전 전승을 거둔 원성진 역시 지진 피해 기부금을 낸 것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한편 중국 유명기사들도 쓰촨성 기부에 앞장서고 있다. 녜워이핑 마샤오춘 위빈 창하오 구리 등이 성금을 기부했다. 그 중 구리는 10만 위안을 기부하여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했는데, 2년 전 충칭에서 가뭄피해를 입었을 때도 구리는 중국기사들 중 유일하게 상금 5만 위안을, 그리고 중국 남부지역의 폭설을 맞았을 때에도 5천 위안씩 기부했다고 한다.
“그간 바둑이 정적인 양반놀이문화에서 활동적인 두뇌스포츠로 변모되는 시점이라 이러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는 일에 적극 동참한다는 면에서 대환영이다. 바둑의 스포츠로서의 위상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며 바둑가는 이러한 기부문화의 확산을 반기고 있다.

▲ 타이젬에서 제4회 동양증권배와 함께 했던 '사랑의집' 후원 이벤트. 서능욱 9단이 사랑의집을 방문해 후원금을 전달했다. |
비교적 덜 알려진 바둑인의 선행
그간 바둑계가 기부의 사각 지대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10여년 쯤 김덕규 8단이 기사회 회장일 때 불우이웃독기 사인회를 연 적이 있다. 유명기사들이 십시일반으로 합죽선에 사인도 했고, 행사 당일 대회장 입구에서 조훈현 이창호 등 ‘거물급’이 나와서 반겨주었다. 당시 필자도 너무 기쁜 마음에 털컥 거금을(?) 기탁했던 좋은 기억이 있다.
당시 한국기원이 처음 개최한 자선 지도 대국이었는데, 참가한 프로기사들과 바둑팬들이 모은 성금은 물론이고, 조훈현·이창호 등이 금일봉을 출연했고, 프로기사회, 한국기원이 별도의 성금을 마련하여 총 867만원을 KBS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전달했다.
작년에는 프로기사들이 대거 인천 구치소를 방문하여 재소자와 교도관들을 상대로 지도다면기를 베풀고, 준비해간 바둑 잡지와 직접 사인한 바둑판 등을 선물로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군부대 노인회 등에도 대거 프로기사들이 파견되어서 광의의 기부를 실천한 적이 있다.
조훈현은 중국의 오지에 있는 어린이를 수년째 개인적으로 후원한 바도 있고, 중국의 조선족 프로인 박문요가 어려웠던 시절 남몰래 그를 도운 적도 있다. 또한 서능욱과 그의 부인인 현인숙(대한체스연맹 회장)씨의 경우는 장애인바둑대회를 올해로 9년째 후원해오고 있고, 장애인 노인 등 소외된 약자에게 후원을 생활화하고 있다.
인터넷 바둑에서는 프로기사의 캐리커처가 아바타로 출시된 적이 있는데, 아바타 판매 수익금 중 일부가 불우이웃돕기에 사용되기도 했다. 또 타이젬에서 실시한 아마기사 김용재·안지영 돕기 이벤트도 유명한 ‘개미후원’이었다.
바둑인들의 선행은 그 뿐이 아니다. 어떤 아마추어대회에서는 입상자 상금의 10%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낸 적도 있고, 지지옥션배 바둑대회에선 매 대국이 끝난 뒤 대국자의 사인바둑판을 추후 지지옥션 경매에 붙여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기도 했다.

▲ 타이젬과 청아모가 함께 실시한 아마기사 김용재 돕기에 함께 나선 조훈현 9단. |

▲ 청아모 회원와 함께 연구생 출신 안지영 돕기에 참여한 타이젬회원들. |
이제는 바둑계도 적극적인 기부할 때
이 외에도 소개되지 않은 바둑가의 선행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바둑계 내에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또 바둑인이 바둑인에게 행한 도움이지 바둑과 관계없는 일반 국민을 향한 도움에 있어서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돈이 많아도 두 켤레 신발을 한꺼번에 신을 수 없다.’는 말도 있듯이 국민적인기부마케팅을 장려하는 흐름이다. 탤런트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입양을 몸소 실천해 입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없애는 데 앞장섰다. 또 ‘바둑인 가수’ 김장훈은 10년 동안 연예활동하면서 기부한 금액만 40억 원에 이르는 ‘기부천사’이다.
지난해 일어난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에 우리 바둑계도 조훈현 등 기사회에서 대거 참가해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그러나 아직은 바둑계가 사회적인 봉사활동을 한 기억은 연예계나 스포츠계에 비하면 미비한 편이다.
바둑계도 기부마케팅을 강화하자
다시 강조하지만, 성스러운 기부에 있어서 반대 급부를 바라는 맘이 조금이나마 끼어있다고 해서 기부 자체가 비난 받아야할 시대는 이미 아니다. 각 분야의 인기 있는 저명인사들의 선행들이 종종 매스컴에 흘리고 알려지는데,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 큰 인기를 누리는 선행의 이중성인 이면의 모순이긴 하다.
이세돌·이창호 같은 유명인은 어떤 분야 인사보다 대중에게 친근하고 확산 속도도 빠르다. 이런 경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다. 비단 바둑인에게 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바둑기사를 응원하는 시절이 되었으면 싶다.
바둑인들은 팬에게서 받는 것에는 익숙하고 베푸는 것엔 덜 익숙한 게 사실이다. 사회속의 일원으로 바둑인도 베푸는 기부 마케팅을 이용하면 어떨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상급기사가 1승을 거두면 기부금으로 일정액을 기부하는 ‘사랑의 1승 프로젝트’도 고려해보자. 바둑이 보다 국민적인 스포츠로 다가가는 첩경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