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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기타]

현해탄을 이은 바둑가교

대구·후꾸오카 친선바둑교류전 기행

매일신문 양현모2008-06-26 10: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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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회우(以棋會友)' 바둑에 의해, 바둑이 있으므로 친구를 사귀며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때문에 바둑을 구심점으로 하는 모임이 자연스럽게 형성됨은 소망스런 일이라 생각되며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벌써 15회째를 맞이하는 대구·후꾸오카(福岡)친선바둑교류전이 올해는 일본에서 6월 7일~9일 까지 열리며 대구측에서 22명(단장 이재윤 대구바둑협회장)의 선수단이 출전했다.


6월 7일, 첫째날
오전 5시 30분까지 출발지인 대구바둑협회 앞에 집결했다. 모두가 여행 준비 관계로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잠을 설친 탓인지 부스스한 얼굴이었지만 서로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금방 들뜬 기분이 되며 다소 상기된 표정이다. 특히 이번에는 여성 선수단이 많이 구성되었다.

전국바둑협회 중에 여성바둑 보급 활동이 가장 뛰어난 대구협회는 지난 4월19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여성연맹 지부대항전에서 참가 26개 팀 중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래서 이번 대표팀에는 이재윤 협회장의 배려로 역대 대구여성지부 회장들이 참가하게 되었고 기타 가족 동반과 함께 여성이 7명 포함 되었다.

전세대형버스로 출항지인 부산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오전 7시경, 이미 전날 부산에 와서 머물고 있었던 한국기원 이석주 출판팀장이 마중을 나오면서 합류했다. 터미널 3층 식당에서 간단히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국 수속을 밟은 후 '코비호'에 승선했다. 코비호는 그야말로 나르는 배라 불리 울 만큼 젯트엔진으로 물을 분사, 그 추진력으로 수면 2m정도 부상하여 평균시속 80Km로 부산에서 후꾸오카까지 3시간에 주파하는 쾌속선.

출항시간 8시 30분이 되자 짧은 기적소리를 내며 천천히 나아간다. 눈 익은 오륙도의 하얀 등대와 정겨운 부산항이 점점 멀어져 사라지고 검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망망대해를 괘속선은 하얀 포말의 꼬리를 길게 남기며 미끄러지듯 달린다.

1시간여 지나 현해탄에 들어서자 창가 오른쪽으로 대마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며 승객들은 잠이 들어 선실은 쥐 죽은 듯 고요하고 파도를 헤치는 배 엔진소리만 지속적으로 부르릉 울린다. 그리고 두 시간 가까이 지나 하카다(博田)항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11시 30분.

입국심사를 마치고 빠져나오니 이데미츠 유다카(出光豊)회장을 비롯해 후꾸오카 바둑협회 회원 10여명이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이데미츠 회장은 일본에서도 유명한 '이데미츠 석유'라는 상호의 대형 석유회사를 경영하는 사업가인데 예년처럼 이날도 79세의 노구(老軀)임에도 불구하고 마중을 나와 우리일행을 감동시켰다. 그곳에서 준비한 차량으로 바로 일본 전통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첫날의 관광코스인 아소산(阿蘇山)으로 향했다.

아소산은 일본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며 큐슈지방을 대표하는 영산으로 구마모토현(熊本縣)북동부에 있는 전형적인 복식화산으로 둘레 80km의 세계최대급 칼데라가 형성되어 있다.


▲ 대구 팀 단체 사진.

분화구까지는 케이블카로 이동하여 구경을 했는데 가까이 가자 메케한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관망대에서 내려다 본 둘레 4km, 깊이 100m의 분화구는 불덩이 같은 마그마가 끓으면서 피어오르는 새하얀 분연(噴煙)으로 좀처럼 그 밑을 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걸친 예고 없는 폭발로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 주위 곳곳에는 토치카 같은 콘크리트 대피소를 만들어 둔 것이 눈길을 끌었다. 과연 화산이 폭발한다면 이런 대피소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섬찟한 생각이 들었다.

아소산 관광을 마치고 첫날의 숙박지인 오이타(大分)현의 유후(由布)시 유후인(湯布院)관광온천지구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차창 밖의 풍경은 큐슈 특유의 고원지대를 통과하여 모두를 매료시켰다.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지는 한다(飯田)고원,구주(久住)고원의 초원과 함께 흐드러지게 핀 이름 모를 꽃의 군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2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유후인 온천장 호텔에는 벌써 이데미츠 회장이 후꾸오카에서 별도로 개인승용차로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방 배정만 마치고 미처 목욕을 할 여유도 없이 급히 일본 전통복인 유카다를 걸쳐 입고 1층에 마련된 만찬장으로 내려갔다. 만찬장은 다다미가 깔린 대형 홀인데 사실 이번행사의 공식 환영회가 열리는 곳이다.

먼저 양쪽 단장의 인사말과 선물교환이 있었고 선수들의 소개와 함께 주연이 베풀어졌다. 모두가 늦도록 거나하게 마시며 숙소로 올라가니 역시 바둑꾼들은 어디가나 다르게 이미 몇몇 팀은 임시로 마련한 대국장에서 한·일간의 대국이 펼쳐지고 있었다.


6월 8일, 둘째날
아침에 일어나 창문이 여니 바로 눈앞에 이곳의 상징인 유후다께(由布岳․1584m)가 우람하게 버티고 있어 장관이었다. 유후인에서 숙소를 정할 때는 이 산이 보이는 곳이 가장 좋은 방이라고 하는데 두 개의 봉우리는 마치 우리나라 진안의 마이산과 흡사하게 생겼다. 산 뒤에는 유명한 벳부(別府)가 있다. 아침 식사 후 시간이 남아 호텔 주위를 구경했는데 거리 풍경은 일본의 소도시답게 아기자기한 소품집이나 카페가 많았고 미술관 등 전통 여관과 어울려져 멋진 조화를 이루었다.

다음 여행지는 인근에 있는 고꼬노에(九重). 여기는 얼마 전 까지 만해도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는데 이곳의 계곡을 이용하여 구름다리를 설치, 연간 수 십 만명이 다녀가는 유명관광지가 되었다. '꿈의 다리'라 하는 구쥬유메노 오오쓰리바시는 길이 390m, 높이 173m, 폭 1.5m로 사람만 다니는 인도교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길다. 이에 국내에도 경북 봉화군에서 '낙동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0년까지 청량산전망대에서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세계최장의 현수교를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꿈의 다리 중간에는 약간의 흔들림이 있어 어지럼증이 있는 사람은 도중에 돌아왔는데 주위에 깎아지른 절벽과 그 사이로 여러 갈래 쏟아지는 폭포수는 멋진 풍광이었다.

관광을 마치고 다시 후꾸오카에 돌아온 것은 오후 1시.
먼저 숙소인 야마노우에(山の上)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은 2년 전 대회 때도 머문 적이 있는데 이름 그대로 후꾸오카 서남편의 야트막한 산위에 위치한 중고급호텔. 주변에는 공원처럼 수목이 우거져 있고 멀리 하카다만(灣)을 배경으로 후꾸오카 브릿지,타워,돔경기장 등이 눈 아래 펼쳐져 경관이 일품이었다.

점심식사 후 교류전이 열리는 대회장으로 이동했으며 장소는 각종 문화행사로 사용하는 시내의 쯔꾸시(都久志)회관. 입구에서 각자의 명찰을 받고 일행이 입장하자 대기하고 있던 후꾸오까 회원 및 관계자 70여명 모두가 기립박수로 맞이하여 처음 이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몇몇 여자선수들은 수줍은 듯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대구여성지회 박노준 회장은"바둑을 두면서 이런 환대는 처음이며 바둑을 배운 보람을 느낀다"며 흐뭇해 했다.


개회식에 이어 대국은 미리 정해진 대진표에 따라 시작되었는데 각팀 19명이 1,2차전을 번갈아 두게 되며 종합전적으로 우승을 가린다. 각자 제한 시간은 40분으로 초읽기가 없는 타임 아웃제.
그러나 대개는 시간배분을 잘 하여 시간 내에 대국을 마쳤으나 계시계 사용이 생소한 선수는 자신의 시계를 누르지 않아 시간패를 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결과는 1차전 11승 8패, 2차전 10승 9패 종합전적 21승 17패로 대구팀이 이겨 작년의 패배를 설욕했다.

특히 대구여성지회 양을희 전 회장(아마4단)은 이데미츠 회장과 대결했는데 한국 특유의 힘 바둑을 구사하며 완승을 거두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대회가 끝났을 때는 이미 바깥은 어둠이 깔렸고 누군가의 선도하에 모두가 나까스(中洲)로 향했다. 나까스는 도쿄-신주꾸, 나고야-사까에와 함께 일본의 3대 유흥가로 손꼽힐 정도로 술집이 많으며 일본 밤 문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 일행이 찾아 간 곳은 나까스의 가장 중심인 나까시마도리(中島通り)바로 옆에 있는 한 주점으로 수년간 교류전의 마지막 밤을 보낸 단골집이다.


6월 9일, 셋째날
돌아오는 날은 특별한 관광이나 스케줄이 없고 배의 출항시간이 오후 3시 30분으로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았다. 그래서 찾아 간 곳은 시내에 있는 후꾸오카 바둑연구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기원이라는 간판은 거의 없다. 대신 마작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곳에 찾아가면 구색으로 바둑판이 몇 개 비치된 정도다. 이런 환경에서 요즘 일본 바둑의 퇴조와 인구 감소로 사양길에 접어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이에 이데미츠 회장은 어린 꿈나무의 육성과 예전과 같은 일본 바둑 부흥에 뜻을 두고 얼마 전 중심지 텐징(天神)에 바둑을 둘 수 있는 제대로 된 장소와 바둑 연구실 마련을 위한 비용을 쾌척, 개설하였다.

연구실 입구 간판에는 큐슈지역의 바둑 총본부답게 전국 어린이 보급회 큐슈총본부, 아마바둑연구 박우회(博友會), 후꾸오카국제교류기우회 등 다양한 활동상을 보여주었다. 연구실은 후꾸오까 기우회의 간사역을 맡고 있는 무라오카 세쯔오(村岡節夫)아마6단이 관리를 그의 동생, 조카가 사범을 맡고 있는데 모두가 쟁쟁한 실력의 바둑 가족. 동생 무라오까 도시히꼬(村岡利彦)아마 7단은 10여전 전국 아마본인방 준우승으로 조치훈 9단에게 기념 지도기를 받은 적이 있으며 조카 무라오카 신야(村岡信也․ 25) 아마 7단은 대구에도 두 차례 교류전으로 온 적이 있는데 일본학생선수권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연구실에 아직 인터넷이 설치되지 않아 며칠간 바둑 소식이 깜깜하여 답답했다. 우리가 한국을 떠나온 7일은 제21회 후지쯔배 8강전이 벌어지는 날로 모두가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역시 한·일간의 친선대국이 벌어졌고 몇몇은 인근 백화점가에 쇼핑을 나갔다.

출항 시간에 맞춰 하카다여객터미널에 나가니 벌써 이데미츠 회장과 일본 기우회 회원 10여명이 우리들을 배웅하기 위해 나와 있었고 내년에 대구에서 만날 것을 기약,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며 배에 올랐다. 돌아오는 선실의 창밖을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역시 일본은 우리가 욕하기 부담스런 상대다. 의식구조, 공중도덕, 검소함 그리고 소리없이 세계 1등 국민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일본의 삶을 접하면서…. 이에 반해 우리는 실속도 없이 시끄럽기만 하고 속을 들여다보면 텅 빈 물통 같은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만 하다. 무조건 대책 없이 욕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실속을 차려놓고 정부나 모든 사람들이 일본을 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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