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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

제1회 잉씨배/대장정(大長征)④

되짚어 보는 '조훈현 잉씨배 쟁탈기'

김종서 작가2008-08-07 14: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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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오후 8시 타이젬 동양생명배 서버에서 한·중 수퍼대결 3탄 조훈현 9단 대 녜웨이핑 9단의 대결이 열린다.

중국의 녜웨이핑 9단은 중·일 수퍼대항전을 통해 일본의 강자들을 연파하면서 ‘철의 수문장’이란 칭호를 획득한 바둑 영웅이다. 수백년 동안 바둑문화를 가꿔오면서 바둑의 본산임을 자랑해왔던 일본의 콧대를 꺾으며 중국 바둑의 저력을 유감없이 떨친 주인공이 바로 녜웨이핑 9단.
그 무렵 절정기에 올라있던 녜웨이핑 9단을 제1회 잉씨배 세계바둑선수권전 결승에서 3대2로 꺾으며 바둑황제에 등극한 조훈현 9단 또한 변방에 있던 한국바둑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영웅이다.

조훈현 9단이 잉씨배 우승을 차지하며 바둑황제에 등극하기 까지의 과정을 김종서 작가의 화려한 필체로 되짚어 본다. 다시보는 제1회 잉씨배 결승전은 8월 4일 부터 10일까지 계속된다.

☞ 제1회 잉씨배/대회전(大會戰)의 서막①
☞
제1회 잉씨배/별들의 전쟁, 별들의 밀어②
☞ 제1회 잉씨배/4虎의 격돌③


제1회 응씨배 세계바둑대회는 1988년 8월에 시작해 1989년 9월까지 이어진 길고 긴 여정이었다.

조훈현이 국가의 명예를 걸고 결승전을 준비하는 사이 국내바둑계의 판도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오랫동안 최정상을 조훈현이 독점하고 있는 실정에 간간이 서봉수가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한두 개의 타이틀을 공략하는 형국이었는데 1988년 제6기 대왕전에서 유창혁 3단이 도전자로 나서 조훈현을 3:1로 꺾은 것.
경천동지할 대사건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창호 3단도 KBS 바둑왕 타이틀을 획득하며 살금살금 스승의 영역을 넘보고 있었다.
그러나 7관왕 조훈현의 벽은 아직도 높기만 했다.

 

▲ 잉씨배 초대장.

응씨배 4강전이 끝난 뒤 5개월 후.
1989년 4월 25일, 중국 항주에서 대망의 결승전이 열렸다.
조훈현을 앞세운 한국선수단이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었다.
주최 측에서 결승전 5국을 전부 중국에서 진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국제관례에 어긋난 방식, 한국기원은 강력히 반발했다. 애당초 예선 엔트리 선발 때도 불이익을 당한 한국으로써 더 이상 주최 측의 일방적인 독선을 허용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명실상부한 세계바둑황제를 가리는 결승전인데 녜 웨이핑의 홈그라운드에서 다섯 판을 전부 두자는 것은 져달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한국의 강경한 태도에 주최 측은 한발 양보했다. 중국에서 세 판, 제3국에서 두 판을 두기로.

항주(杭州)는 양자강 남쪽에 위치한 절강성의 성도(省都)로 중국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관광도시다.
‘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 극락이 있고 땅에는 蘇州와 杭州가 있다.)
예로부터 그렇게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물의 도시 소주와 항주가 이상향으로 통해오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역사적으로도 이야기거리가 풍부한 곳.
찡그린 얼굴마저도 아름답다는 천하미녀 서시(西施)의 고향이기도 하고 춘추시대 때 와신상담의 고사를 남긴 월왕 구천의 땅이기도 하다.
서시의 용모를 빗대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으며 또한 비 오는 날에도 좋다’는 항주.

한국선수단이 홍콩을 경유하여 항공, 선박, 열차 등 온갖 교통수단을 동원하여 항주에 도착한 날 그 곳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당시에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였다. 시내로 들어가는데 공항 활주로에 줄지어 있는 미그기 편대의 살벌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상극락이라던 항주의 이미지가 어쩐지 어색했다.

矛利盾堅 勝負在天(창은 날카롭고 방패는 두터우니 승부는 하늘에 달려있다.)
항주일보는 4월 25일자 1면에 대서특필로 두 바둑영웅의 대결을 알렸다.

응원차 남편을 따라온 정미화씨는 첫 판이 벌어진 아침, 대국장인 샹그리라 호텔을 떠나 항주의 명찰 영은사를 찾았다.
불교신자인 그녀는 이국의 사찰에서 108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승부사의 아내로 수십 번 수백 번 남편과 함께 큰 승부를 겪어왔지만 이 날은 그 모든 날의 긴장을 합한 것만큼 가슴이 떨리고 입 안의 침이 마르는 초조감이 엄습해왔다.

아아, 차라리 서울에 남았어야 할 것을….
그녀는 불상에 엎드린 채로 무수히 후회했다.
듣자하니 녜 웨이핑은 굉장한 힘을 지닌 강자라는데…. 주최 측이 노골적으로 그의 우승을 유도하기 위해 중국에서 결승전을 준비했다는데….
낯설고 물설은 항주 사람들의 미소도 친절한 게 아니라 녜 웨이핑의 우승제단에 바쳐지는 제물에 대한 조소(嘲笑)로만 느껴졌다.
그이도 나처럼 위축되진 않았을까?
하늘처럼 믿는 남편이지만 그녀는 자꾸 불안했다. 그저 국적에 관계없이 인자하기만한 부처에게 무릎을 꿇고 남편이 제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비는 수밖에 없었다.

반면 녜 웨이핑의 아내 쿵 샹밍(孔祥明) 8단은 심장이 약한 남편을 위해 산소호흡기를 준비한 채 대국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 스포츠서울 1면에 실린 제1회 잉씨배 시작 기사.

세기의 대결, 제1국.
백을 잡은 조훈현은 초반 특유의 속력행마로 요소를 선점하고 추격해오는 녜 웨이핑의 말들과 강렬한 접전을 펼쳤다. 조훈현의 기세에 놀란 녜 웨이핑은 쉽사리 승부수를 던지지 못하고 야금야금 추격하는 소모전을 펼쳤다.
안개와도 같은 상대-
과연 녜 웨이핑은 절세고수였다.
백이 그토록 발빠르게 행군하고 요충지를 두루 차지했는데도 흑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곳곳에 매복하여 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거였다.
집 차이도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후반에 들어 조훈현은 몇 차례 사이드 스텝을 밟았다.
때려도 때려도 굴하지 않고 달라붙는 녜 웨이핑의 인파이팅에 피로를 느낀 듯 보였다.
그런데 실상 녜 웨이핑은 그로기 상태였었다. 산소호흡기 신세를 져야 하는 몸 상태도 그러려니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전황(戰況) 때문에 의식이 분열지경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조훈현의 3점승.

바둑이 끝나자 대국실과 마찬가지로 중압감에 가라앉아 있던 관전실이 왁자지껄 소란해지기 시작했다.
중국 전역에서 몰려온 기자들이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대국자들을 겨냥했다. 사상 최초로 세계바둑대회 결승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선수단과 동행한 한국기자단도 본사에 제1국 승리를 알리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그 낭보는 곧바로 한국에 전해져 야간에 발행되는 익일 가판 신문 1면에 커다랗게 실렸다.

첫판을 이긴 조훈현은 선수단과 함께 샹그리라 호텔의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운기조식을 위해 이국에서의 식사를 극도로 조심했지만 이제는 마음놓고 포식해도 상관없으리라.
개선장군이 들어서자 식당에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승자를 환영하는 호텔 측의 배려였다. 긴 여행, 큰 승부에 지칠 대로 지친 한국선수단은 모처럼 웃음꽃을 피우며 찬란한 중화요리의 진수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한편 어이없게 기선을 제압당한 녜 웨이핑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호텔방에 두문불출 틀어박혀 패배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는 원수를 갚기 위해 섶에 누워 자며 이를 갈았고, 월나라 왕 구천(九踐)은 자나깨나 쓸개를 핥으며 패배의 치욕을 되새긴 끝에 마침내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던가?
녜 웨이핑은 그네들 조상의 교훈을 되씹으며 복수를 벼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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