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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수첩]

베팅의 강태공 - 아리랑목동 6단

당구, 탁구 등 수준급 실력

김종서 작가2008-10-15 15: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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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초라하지 않은 집

타이젬에 베팅고수들이 허다하지만 티머니를 몇 백억 보유하고 있다 해서 지존이나 고수라는 호칭을 쉽게 붙여줄 수는 없다. 또 베팅승률이 하늘을 찌른다고 해서 붙여줄 수도 없다. 베팅이라는 건 마술과도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연기처럼 머니가 증발하기 때문에 영원한 위엄을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정한 고수는 베팅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타이젬에서 숱한 회원들을 만났었다. 그 중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지켜보면 경이로운 유저, 아리랑목동6단을 소개해드린다.

그의 미니홈피를 보면 아담하고 왠지 허전한 분위기다.
69만 5천 9백 포인트의 재산에 6단 전적 1승 6패. 베팅전적이 16,615승 13,004패.

솔직히 좀 황폐한 게 사실이다. 피그윙 쪽에도 같은 아이디 아리랑목동으로 즐기는데 전적표를 보면, 2만 3천여 승에 무려 10만 판의 패배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40조를 지니고 있는데 잘 나갈 때 147조를 보유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회원으로 보이나 아리랑목동처럼 치열한 베팅마니아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PC통신 시절부터 인터넷바둑을 즐기기 시작했던 그는 타이젬이 생기면서 차분하게 정착한 다음 정확하게 하루의 절반을 이 공간에 묶어두었다. 회사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컴퓨터 전원을 켜고 타이젬에 로그인하는 것. 그리고 대국실에 몸을 담그고 대화창을 화면 아래로 가라앉혀 놓는다.

음방에서 음악을 듣거나 기우들로부터 날아오는 쪽지를 수령하기 위한 장치다. 간혹 대국실에서 빅매치가 벌어지면 동료들 눈치를 살핀 뒤 고양이처럼 살짝 들어와 베팅에 참여한다. 베팅 액수는 극도로 소액인 경우가 많다.

아이템을 구입한 적이 없으니 타이젬에 조금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다고 말하나 그의 타이젬 활동내역을 살펴보면 이 남자의 즐기는 법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니홈피에 걸려있는 강변의 별장이 바로 그의 꿈을 상징하는지 모르겠다. 조용히 잔잔하게 그러나 아주 알차게-

S#2. 이 남자의 타이젬 즐기는 법

아리랑목동6단은 욕심이 많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선택에 관한 확신은 놀랄 만큼 집요하고 끈질기다. 다른 마니아들처럼 큰 액수를 베팅하고 승패의 스릴을 즐기는 쪽이 아니라 머니는 적게 가되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글렀는지를 지켜보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지목하고 지지한 기사가 승리하길 간절히 바라고 초중반에 왕창 망가졌어도 끝내기 단계에서 상대편 기사가 실수하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은 고액베팅자와 다를 게 없다. 기억력도 뛰어나서 그 동안 자신이 베팅했던 주요 대국의 흐름을 아직까지 줄줄 외우고 있을 정도다.

"준키, 번개소문, 우정과 이 분들이 타이젬 3대 블랙홀이죠. 이 양반들 대국에 베팅을 했다하면 암에 걸릴 것 같습니다. 누구와 두어도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거든요. 승률을 보고 판단하면 귀신같은 묘수를 터뜨려 엎어버리고 다 이긴 바둑이다 싶으면 막판에 삐끗 실족해버리고......아주 미쳐버린다니까요."

그래서 올인에 아주 익숙하다고 밝힌다. 지갑이 텅 비면 홈피로 가서 설문조사에 참여해 10만원을 챙기고 정회원 충전을 최대한 활용한다.


▲ 10월 15일, 조훈현 9단에게 전재산을 베팅한 아리랑목동.


"1억을 베팅하나 10만원을 베팅하나 다를 게 뭐 있겠어요? 느낌만 거창할 뿐이지 본질은 같습니다. 티머니는 숫자일 뿐입니다. 다만 그것은 나의 판단과 성의를 표현하는 지표인 것이죠."

아리랑목동6단의 성격과 노하우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한 마디다. 이렇듯 머니에 초연하면 승부의 결과에도 느긋한 게 당연하다. 그는 고수들의 한판대결을 예술로 감상하길 좋아하는 것이다.
피그윙에서 그의 베팅 법을 들어보면 말문이 막힌다.

"7구2 이상의 큰 게임은 하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프로 방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게임 도중에 누군가 하프를 치고 갬블을 걸어오면 무조건 카드를 덮습니다. 죽어주는 거죠. 상대가 좋은 패를 들었거나 혹은 들었다고 시위하는데 굳이 확인할 이유가 뭐 있겠어요? 덮으면 갈등이 사라지는데 하하하."

뒷머리를 긁으며 웃는 아리랑목동6단, 보살로 보인다. 그렇지만 포커 게임의 본질은 사실 멤버 간의 갈등과 충돌 아닐까?

"아니요. 사람 나름이죠. 저는 피그윙 포커 게임을 낚시로 생각합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프로그램이 참 재미있잖아요? 한가할 때 그 방에 들어가서 카드 패를 받고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나 포커 같은 족보 카드를 기다리는 맛이 쏠쏠합니다. 내가 기다리고 갈망하는 카드가 똑 떨어지면 마치 감성돔을 낚는 기분이던데요. 내가 좀 미성숙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하하."

바둑 타이젬 6단, 당구 에버리지 300, 탁구 공기업 사원대표 수준으로 뭐 한 가지 취미를 붙였다 하면 아마추어로 도달할 수 있는 한계까지 도달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마니아다.

▲ 유저수첩에 단 아리랑목동의 댓글.


S#3. 사람이 그립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기업에 근무한다. 내성적이나 성실의 극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형제가 많은 가정의 장남으로 집안을 이끌어오다 보니 어느새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져버렸다. 그래서 아주 늦게 결혼해야 했고, 또 아이들을 양육해야 했다.

어디에도 한 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퇴근하고 땅거미내리는 도시에 서면 왠지 모를 허허로움에 가벼운 몸살을 앓는다고 고백한다. 꽉 채워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자신을 위로하진 못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술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술친구도 많지 않다. 그래서 타이젬 친구들을 좋아한다.

특별히 동호회에 가입하진 않았으나 누군가 불러주면 어디라도 달려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켜주는 유저다. 타이젬 홈피에 업데이트되는 모든 기사와 칼럼들을 빼놓지 않고 읽으며 그 아래 반드시 댓글로 글쓴이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교감의 한 마디를 건넨다. 타이젬의 모든 이벤트에 열심히 참여하니 사이트 충성도를 따지면 지존 급이 틀림없다.

아리랑목동6단은 자신의 속내를 쉽게 밝히지 않지만 병적으로 다정한 중년이다. 친구가 보고 싶지만 그 친구가 바쁠 것 같아 소심하게 상황을 따져보는 순진파다. 그러나 친구들이 모이고 식사라도 할라치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카운터로 가 계산을 해버린다. 친구들이 그 계산의 독점을 탓하거나 감사해하면 부끄러워 귓불이 붉게 달아오르는 동안의 중년이다.

진정한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아끼며 도와야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것이 그의 베팅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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