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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수첩]

반상의 길라잡이-줄그은 호박 9단

'타이젬 9단과 대국하고 싶은 분들은 신청하세요'

김종서 작가2008-10-19 20: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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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독산동 바둑 아지트

프로9단을 입신이라 하지만 신들의 세계에 머무는지라 체감하기 어렵다. 우리들에게는 저잣거리 기원1급이 귀신이고 호랑이고 저승사자다. 1급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년쯤은 바둑에 미쳐버려야 가능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딱 두 달 만에 타이젬 10급에서 1급이 된 사나이가 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K과장은 타이젬을 통해 바둑에 재미를 붙이면서 속성승급 과외공부를 시작했다. 고수2방에서 무료로 중계해주는 강의 방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드나들었고, 미친 듯이 바둑을 두었다. 처음부터 아예 바둑을 몰랐기에 악습이나 나쁜 선입견이 없어 강의 방 사부가 가르쳐 준 수들이 목화솜에 물 스며들 듯 빠르고 부드럽게 K과장의 두뇌에 장착되었다. 말 그대로 그는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 동급의 적수들을 무찌르고 진군을 거듭했다.

마지막 화룡점정은 1:1 맨투맨 스킨 쉽 특강이었다. K과장은 그 동안 사부의 강의 방에서 보고 들은 기보를 저장한 노트북 하나만 달랑 들고 사부가 거처하는 독산동 골방을 직접 찾아갔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침식을 함께 하면서 비기의 무공을 익혔다. 수업이 끝나는 날 K과장은 타이젬 대국실에서 꿈의 1급으로 승급했다. 두 달 만에 도달한 기력이기에 본인은 물론 사부조차 믿기 어려운 성취였다. K과장의 기록도 눈부시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신화의 주인공은 ‘호박꽃사랑7단’이다. 뮤지컬 배우인 그녀는 10급에서 5개월 반 만에 7단이 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녀 역시 K과장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사부를 만나 속성 과외를 받았다. 그녀의 아이디로 짐작할 수 있듯이 바로 그 사부의 타이젬 이름은 ‘줄그은호박9단’이다.

호박 사범은 매일 타이젬 고수2방에서 무료로 강의 방을 열어 바둑을 배우고자 하는 유저들에게 길라잡이를 자처하는 바둑보살이다. 독산동 골방에 컴퓨터 한 대를 마련해두고 하루 종일 타이젬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할 일 많은 세상에 왜 바둑만 두고 사느냐 따질 이유는 없으리라.

명문 경기고를 나왔고, 남부럽지 않게 큰 사업체를 운영했었는데 말년에 삐끗한 뒤로 돈도 싫고 사람도 싫어져서 그저 좋아하는 바둑만 실컷 두고 하수들에게 네비게이션 역할이나 하면서 여생을 즐기겠다는 게 호박 사범의 설명이다. (그는 작년에 회갑을 맞았다.)


S#2. 호박이 풍년인 이유

타이젬에 호박꽃 유사 아이디가 서른 개쯤 된다고 한다. 그게 전부 ‘줄그은호박9단’의 맹렬추종자들이다. 조건 없이 바둑을 가르쳐 준 사부이니 따르는 건 당연하다. 그의 강의는 ‘마인드 복기’로 유명하다. 두는 사람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해부하고 보다 효율적인 길을 다시 찾아보는 방법이다.

호박 사범이 그런 강의 방법을 창안한 것은 독일 체류 시절 때부터였다. 오래 전 사업에 실패하고 도피 차원에서 독일로 훌쩍 떠났었다. 아무런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이국에서 방황하다가 우연히 독일에도 바둑협회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스스로 찾아갔다. 그 협회에서 거의 서방불패로 군림하고 있는 일본인 강사가 있었는데 호박 사범이 도전해 강사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그러자 협회에서 호박 사범을 마이스터로 칭하면서 강사 요청을 해왔다. 그때부터 푸른 눈의 제자들을 위해 그 자신도 다시 바둑 공부를 시작했다.

동양문화에 생소한 독일의 바둑제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할지 부단히 노력한 것이다. 친절하고 효율적으로 수를 알려주는 사부의 소문이 나자 독일 전역에서 제자들이 몰려왔다. 맘먹고 강의료를 챙겼다면 적잖게 수입을 올렸을 테지만 해외도피를 한 입장에서 불법으로 취업을 하기는 어려웠다. 독일에서는 그런 수입을 정식으로 신고해야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호박 사범은 바둑과 관련해서 프로가 아닌 이상 돈과 결부되는 것을 병적으로 경계하는 결벽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수2방의 무료강의 방이 개설된 것이다.

호박 사범으로부터 많은 유저들이 즐겁게 바둑을 배우고 속성 승급을 이룬다고 하니 정녕 실력향상에 뜻이 있는 분들이라면 ‘줄그은호박9단’ 강의 방을 노크해 볼일이다.
그러면 당신께서도 곧 호박꽃 유사 아이디를 만들고 싶어지리라.


S#3. 바둑은 영혼의 스포츠다

호박 사범은 자유인이다.
사랑하는 부인과 사별하고 자녀 셋은 출가해 가정을 이루었으니 이제 자신만 추스르면 되는 입장이다. 생각하면 한없이 쓸쓸한 홀몸이지만 온라인의 세상으로 들어서면 사방에서 친구와 제자들이 인사를 건네오니 부러울 것이 없다.

나를 반겨주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바둑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는 방법 뿐일 터. 그래서 호박 사범은 매일 타이젬에 들어와 강의 방을 개설한다. 이 풍진 세상에서 그가 만난 가장 다정한 사람들이 타이젬 가족들이라는 말에 필자도 절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므로 타이젬이 호박 사범을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이유를 제공했고, 그는 이곳의 친구들에게 바둑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호박 사범은 5살 천재 어린이에게 바둑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그 꼬마는 4개월 만에 기리를 터득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타이젬에서 베팅대국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강자가 되었다. 물론 호박 사범의 엄명 때문에 베팅대국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꼬마의 부모가 프로에 입단시키기 위해 정식으로 아이를 유명한 바둑도장에 등록을 시키면서 호박 사범과의 인연이 끊어졌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 호박 사범은 꼬마 제자의 바둑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절망하고 말았다. 화사한 천재성이 번뜩이던 제자의 바둑에서 무서운 독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무한경쟁 체제로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바둑도장의 시스템이 꼬마 제자를 매복의 저격수로 변화시켜버렸음을 직감했다.

“바둑은 영혼의 스포츠 아닙니까? 승부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특정한 상대와 아름다운 수담을 한 수씩 주고받는 것도 재미있지 않나요?” 호박 사범은 이렇게 말한다.

“타이젬에서 9단과 대국해서 승점을 기록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신청을 하십시오.”
그는 그렇게 늘 열려있다. 한 판 뒤에 깔끔한 복기지도는 승점과 더불어 따라오는 서비스다.

(예고: 유저수첩 다음 에피소드는 영국 유학 중인 청소년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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